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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키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아쉬운 점 책 잡설

존 키건 경이 서거하셨습니다.

물론 미시와 거시를 넘나드는 명불허전 존 키건이긴 하지만, 러시아 혁명에 대해 적게나마 논할 때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듭니다. 


키건은 러시아 혁명 서술을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The Russian Revolution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이런 서술은 좀 비약하면 존 키건의 정치적 편향성을 좀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키건이 인용하는 파이프스는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러시아 혁명 연구자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대소련 전문가로서 레이건 대통령의 보좌관을 했던 사람입니다. 


파이프스의 러시아 혁명관은 레이건의 보좌를 했던 만큼 그 사상이 뻔하고도 교묘합니다. 파이프스의 소련관과 러시아 혁명사관은 반 소비에트 서술에 충실한 전통주의 사관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파이프스의 책은 단순한 우파 프로파간다 수준이 아닌 교묘한 수법으로 10월 혁명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소비에트 체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파이프스의 사관을 요약하면, 볼셰비키 혁명은 결국 차리즘 독재와 다를 게 없는, 위선으로는 차르 체제보다 더한 인텔리겐치아 독재이자 차리즘의 후예고 스탈린 시절의 테러는 레닌 시절부터 예약되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소비에트 체제는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게 파이프스의 연구였습니다. 레이건 및 미국 보수 쪽 입맛에 이렇게 잘 맞는 사관도 없을 겁니다. -_- 당연히 파이프스의 사관은 E. H. 카를 비롯한 수정주의 석학들과 지속적으로 논쟁이 있었고 아마존 서평란에서도 호불호가 명백히 엇갈리는걸 보실 수 있습니다.


키건이 이렇게 논쟁을 일으킬 수 있고 여러 모로 편향된 책만 인용해 러시아 혁명을 서술했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키건의 러시아 혁명관에서 느낀 반감은 이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1918년에 서방 연합국-프랑스와 영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도-은 모두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훗날 소련 역사가들이 내놓은 사건 해석과는 달리 어느 나라도 10월 혁명을 되돌리려는 목적을 갖지 않았다. 실제로, 볼셰비키가 마침내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에 서명한 다음날인 1918년 3월 4일에 북부 러시아 무르만스크에 상륙하여 그 해안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부대가 된 170명의 영국 해병대는 트로츠키의 권고를 받아 도착했다. 트로츠키는 이틀 일찍 무르만스크 소비에트에 전보를 보내 연합군이 "지원은 어떤 것이든 전부" 수용하라고 지시했다"(한국판 545~546 쪽)

키건은 이 대목에서 R. 루켓(Luckett)의 The White Generlas와 파이프스의 책을 인용했고, 그 두 책을 소련 쪽 사서 및 수정주의 사관 사서를 통해 교차검증하지 않았습니다. 저게 단순한 팩트의 제시라고 할 지라도, 팩트의 제시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도성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서술은 이것입니다.

"전쟁의 정치적 귀결이 남긴 유산은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세계 문명의 한 축이었던 유럽은 파괴되었고, 기독교 왕국들이 패배 이후에 신을 부정한느 전제정권인 볼셰비키와 나치로 변모했다. 두 전제정권이 점잖은 보통사람들에게 저지른 잔학행위를 생각하면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피상적인 차이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한국판 594쪽)

나치 체제와 소비에트 체제의 동일시가 아주 좋은 선전 소재였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에 담긴 키건의 관점에 대해서 더 말할 것도 없겠군요. 키건은 제2차 세계 대전 서술에서도 반공, 반소비에트 관점을 드러냈었는데 이걸 10년 가까이 수정을 안한 겁니다. 


물론 이런 아쉬운 점을 제외하고는 키건의 책은 훌륭합니다. 어디까지나 지엽적인 문제에요. 단지 이런 편향을 드러내지 않고 조금 더 신경써서 썼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아니면 러시아 혁명사를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월>과 빅토르 세르주의 <러시아 혁명의 진실>,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혁명의 시간>으로 먼저 접하고 계속해서 소련측 내부 자료 번역해 올리는 제가 편향되어 있던지요.



덧글

  • 그냥저냥 2012/11/21 11:20 # 삭제 답글

    음 그렇다면 밑에 읽으신 책과 같이 읽으면 괜찮을까요??

    제 1차 세계대전 번역은 어떠한가요? 대충 훑어봤는데, 좀 어색한 표현들이 보여서요.
  • PKKA 2012/11/21 11:22 #

    번역에 대해서는 슈타인호프님이 논하신 게 있을 겁니다. 균형을 잡으려면 결국 책을 다 봐야죠 뭐.
  • 2019/05/13 07:14 # 삭제 답글

    소련이나 나치나 도긴개긴인데 뭘 그리 트집을 잡으시나...소련이 3g더 낫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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