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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작전에 대한 국내 연구사 검토 및 관련저작 간단히 8월의 폭풍

소련군의 만주작전은 일본의 항복, 소련의 동북아 세력 확대, 중국의 공산화, 한반도의 분단, 그리고 쿠릴 열도 분쟁이라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여러 중대한 결과를 남겼다. 러시아의 학자의 표도르 째르치즈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소련의 만주작전만큼 “아시아 역사에서 이만큼 중요한 일주일”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작전의 전모는 한국의 일반적인 대중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다른 작전 및 전투와 비교하면 매우 생소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작전 자체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하여 대중이 접할 수 있는 한국어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익히 국내에 출간된 여러 제2차 세계대전 통사에서 만주작전은 흡사 전쟁 말기의 짤막한 에피소드 정도로만 그려진다. 21세기 이전에 출간된 통사들부터 그리하였다. 미국 타임-라이프(Time-Life) 사의 제2차 세계대전 총서인 『타임라이프 2차 세계대전사』에서 일본의 항복과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다루는 편은 만주 작전을 단 세 쪽에서만 언급한다. 독일의 보수주의 역사가 안드레아스 힐그루버(Andreas Hilgruber)의 저작인 『국제정치와 전쟁전략 :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관련해서 두 쪽에서만 언급한다. 한국에서 21세기 이후에 출간된 저작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유명한 군사사가 존 키건(John Keegan)은 1989년에 저술한 그의 방대한 제2차 세계대전사 통사인 『2차세계대전사』에서 만주작전을 단 한 쪽에서만 언급했다. 존 키건의 제자로 영국의 대중역사가인 앤터니 비버(Antony Beavor) 또한 그의 저서  『제2차 세계대전 : 모든 것을 빨아들인 블랙홀의 역사』에서 만주작전을 두 쪽에서만 다루었다. 폴그레이브 맥밀런(Palgrave Macmillan)사의 아틀라스 제2차 세계대전을 번역한 책에서도 만주작전은 1쪽에서만 다룬다. 그나마 통사 서적 중에서는 영국의 오스프리(Osprey)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을 원본으로 하는 책인 『제2차 세계대전 : 탐욕의 끝, 사상 최악의 전쟁』이 비교적 분량을 할애하는 편이지만 방대한 분량에 비하면 역시 6쪽에 불과하다. 육군사관학교에서 펴낸 『세계전쟁사』에서는 만주작전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통사 서적보다 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제러드 와인버그(Gerhardt Weinberg)의 저작에서도 만주작전은 1쪽에서만 간략히 언급한다.

이러한 통사류를 제외하면 만주작전을 비교적 자세하게 접할 수 있는 저작은 소련 군사사, 특히 소련군의 작전술 개념과 소련군 작전수행에 대한 권위자인 데이비드 글랜츠(David M. Glantz)가 조너선 하우스(Jonathan House)와 공저한 『독소전쟁사』이다. 소련과 독일의 격돌을 소련의 군사작전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만주작전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다루고 있다. 러시아 총참모대학의 교재였던 『러시아 연방군의 전략과 작전술』 과 영국의 소련군 연구자였던 피터 비거(Peter H. Vigor)의 『소련 전격전 이론』은 만주작전을 한국어로 소개된 문건 중 만주작전을 더욱 자세히 다루는 문건이었다. 그러다 두 저서 모두 국방대학교 안보총서로 출간된 비매품이라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았다. 그 결과 소련의 만주작전에 대해서 대중은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접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서적과 달리 만주작전은 전문 학자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여러 번 다루어진 주제다. 한반도의 분단과 동북아 냉전체제의 기원과 맞물리는 중요한 연구 소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의 연구들은 대체로 군사사적 관점에서 작전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 한반도 분단 및 북한 정권의 탄생이라는 국내정치적 맥락에서 작전을 조명한 관계로 작전의 군사적 측면에 대한 고찰은 부족한 편이었다. 요약하면, 만주작전은 기존 선행연구에서 국내정치사와 국제정치사의 “배경”에 불과했다. 선행연구 중 『한반도 38선 분할의 역사』 가 이 중 만주작전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 사학계가 전쟁사를 다루면서도 전쟁의 부차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전시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는 다루지만, 전쟁사의 핵심인 군사사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외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만주작전을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를 둘러싼 소련과 일본의 군사적 갈등 관계의 맥락에서 조명한 연구로는 심헌용의 『소련의 대한반도 군사정책』이 있다. 불균형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연구는 상명대학교 류한수 교수의 연구다. 류한수 교수는 소련군의 만주작전을 1991년의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이 수행한 “사막의 폭풍”작전과 비교하는 논문 「1945년 “8월의 폭풍”과 1991년 “사막의 폭풍”: 붉은 군대의 만주 전역과 미군의 이라크 전역의 유사성 분석」을 통하여 만주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의 유사성을 밝혀내었다. 그러나 언급한 연구들은 모두 전문적 학술연구로, 대중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 관계로 소련군의 만주작전에 대한 한국 대중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백지 상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독자가 만주작전에 대해 “스토리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던 저작은 일본의 대하소설 『불모지대』(不毛地帶)로 추정된다. 『하얀거탑』(白い巨塔)의 저자로 유명한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의 이 소설은, 일본군의 참모장교 출신으로 소련군의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이후 기업가로 성공하는 주인공을 다룬 대하소설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소설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서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하며 고난을 겪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공주의 정서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모델은 다름 아닌 관동군 정보참모를 역임했고 전후 일본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극우 인사로 일본과 한국 양쪽의 정계와 재계의 막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세지마 류조(瀬島龍三)였다. 저자는 세지마의 행적을 미화하기 위해 여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관동군의 항복에서 비통한 감정이 끓어오르도록 묘사하고, 일본군 장교 출신인 주인공이 뛰어난 군인정신과 도덕심을 가지고 공산화된 포로의 핍박에도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는 올곧음과 기개를 가진 인물로 묘사하여 천황 숭배와 우익 내셔널리즘을 미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 작품에서 형성된 만주작전에 대한 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백지상태의 지적 공백을 틈타서 두 개의 음모론이 등장했다. 하나는 한국항공대 강사 이희진의 주장이었다.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 미국의 계획에 따라 벌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희진은, 소련의 만주작전은 한반도를 분단하려는 미국의 음모에 따른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소련군이 작전에 투입했다는 150만 병력은 시베리아 철도로 그 정도의 병력을 3개월 안에 수송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과장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저자는 소련이 미국에 계속 물자지원을 요청하였고, 일본인 거류민의 증언을 바탕으로 실상 소련군은 추레한 복장에 약탈에 바빠서 군기도 빠질 대로 빠진 엉망진창의 군대였으며 작전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급하게 참전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때문에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이 애당초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의 대소불신과 국내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해 한반도 공동 관리에서 분단으로 정책이 전환된 미국의 의도에 따라 참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음모론은 만주작전이 일본의 의도적인 한반도 분할 음모에 의한 결과였다는 주장이었다. 원래는 일본 학자 고시로 유키코(小代有希子)가 2005년에 기고한 논문에서 주장한 가설로 음모론이라기보다는 38선 분할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가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되며 흡사 한반도 분할이 일본의 거대한 음모로 진행되었다는 식의 음모론으로 변질되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일본 대본영은 한반도 분할과 동북아에서 미국과 소련의 충돌을 유도하기 위해 소련군의 만주침공 계획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소련의 남하를 유도했다는 것이고, 관동군이 소련군에게 무력하게 무너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가설은 유명한 한국현대사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가 무비판적으로 저서에 인용하며 한국에 알려졌다. 이 가설은 2005년에 <시사저널>기사를 통해 음모론으로 변질되어 국내에 소개되었고, 2019년 현재에는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창설자로 유명한 언론인 김어준이 교통방송(TBS)에서 진행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재발굴되어 소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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