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ККА Ставка 이글루스 지부

PKKA1918.egloos.com

포토로그



만해 한용운의 모던걸 비판과 본인의 소설 경성활극록

역사의 발전방향이 특정한 목적지라고 규정하는 발전사관의 가장 큰 문제라면, 자기들이 주장하는 발전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른바 17~18세기의 실학에 대해, 수십 년간 실학은 실용적, 서구적, 근대적, 좋은 것으로 인식되어서 이들에 대한 기억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존재로 남았고, 반면 이 실학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비판하거나, 이들을 비판한 사람들은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 낙인찍혀서 대중적 논의와 고찰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어떠한 논거를 가졌는지는 조명되지 않았으며, 논거가 있다 하더라도 기득권 옹호를 위한 것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이러한 사관이 역사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조명한다는 명목 하에 실질 역사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학 논의 관련해서 지두환 교수님이나 유봉학 교수님 같은 분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조선 후기 성리학의 발전을 조선성리학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바라보는데 이분들의 저서를 추천 드리는 바입니다.


일제강점기 여성해방론과 자유연애론에 대한 보급에서도 마찬가지의 경향을 확인하였습니다.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은 절대적으로 긍정적 존재로 매김 되고, 이를 주장한 사람은 위대한 선각자이자 민족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반면 여성해방론과 자유연애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한 사람은, 그것의 논거가 어찌되었건 간에 수구 기득권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여성혐오론자로 낙인찍힙니다. 한민주의 불량소녀들 : ‘스펙터클 경성에서 모던걸은 왜 못된걸이 되었나(휴머니스트, 2017)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민주는 모던걸의 과도한 사치를 지적하는 정상적인 신문기사조차도 여성혐오와 봉건적 가부장제 수호를 통한 남성 기득권 유지의식이라고 규정하는 등 당대 모건걸에 대한 모든 비판을 다 여성혐오로 몰아붙입니다.


저는 소설 경성활극록을 쓰며 이러한 서술방식을 패러디하고 풍자하기 위해, 여주인공이 여성해방론자 친구와의 갈등을 겪는 내용을 서술했습니다.


주리는 그 친구에게서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적연(赤戀)을 빌려본 시절을 떠올린다. 그 친구가 적극 그 책을 거의 성경 전도하는 전도부인처럼 읽어 보라고 강력히 들이밀어서 거의 떠맡듯이 읽어보았었다.


하지만 왠지 두 책의 주제가 주리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주리는 인형의 집에서는 주인공 노라가 남편 헬머의 곁을 떠나는 것까지는 납득이 되는데, 아이들까지 두고 떠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머니 없이 자랄 애들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서였다.


인형의 집은 그래도 봐 줄 수는 있었다. 적연은 주리가 저자 콜론타이가 던지는 메시지에 받은 충격 때문에 꼬박 하룻밤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게 만든 책이었다. 주인공 바실리사의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한 관점과 주인공이 여러 남자와 사귀고 해어지는 줄거리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리가 책을 돌려주며 감상을 묻는 친구에게 자기 견해를 솔직히 말하니, 그 친구는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을 가부장제의 노예이니, 봉건적 악폐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애들이 많으니 여권신장이 안 되는 것이니 하면서 몰아붙였다.


계속 자유연애를 동경하여서 그 친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참았지만, 그런 비난에 부아가 치민 주리는 "그렇게 치면 너도 가부장제의 산물인 결혼제도로 태어난 애 아니니!"하며 맞받아치자 둘 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기 직전까지 갔었다.


-25화 중-


저는 당대 여성해방론자들이 반대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굴었을지는 확인을 못했던 관계로 이 부분은 순전히 상상으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저와 아주 유사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당대에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하니 바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었습니다.


한용운은 30년대 중반에 흑풍, 죽음, 박명등의 여러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 속에서 여성해방론자들이 보면 거품을 잡을 설정을 잡았습니다. 죽음에서는 입만 열면 연애는 신성’, ‘정조는 유동’”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악역을 할당했으며, 흑풍에서는 여주인공이 극단적 자유연애론 및 성평등론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던걸에 대한 한용운의 비판의식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 소설은 박명입니다. 박명의 여주인공은 아편중독자가 된 남편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는데, 이런 여주인공의 모습을 지나가던 한 무리의 양장을 한 모던걸들이 비웃습니다. 한 모던걸이 저런 여자의 행동도 자유이니 덮어놓고 무시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자, 다른 모던걸이 이렇게 반박합니다.


그야 그렇지. 그렇고 말고. 시간적으로 역사의 구속을 받지 않고, 공간적으로 소위 사회 여론의 구속을 받지 않고, 단순히 개성의 자유로 한다면 저러한 일도 무방하다고 보느니보다 차라리 아름답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 따위야 개성이니 쇠성이니 무슨 이익이 있나요. 그저 들은 풍월로 인습에 끌려서 노예적으로 하는 일이지 (중략) 개발의 편자지, 저 따위에게 개성의 자유가 다 뭐람. 저런 것은 다 우리 운동에 대한 종이요, 장애물이에요.”


이렇게 보듯이 남편을 지성으로 돌보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모던걸들이 보기에 운동에 대한 좀이요 장애물일 뿐입니다. 심지어 여기서 모던걸 중 한명은 차디찬 웃음을 지으며 저따위 인간이 콜론타이의 적연이나 입센의 인형의 집같은 것을 보았으면 어떨까?”라고 비웃는 장면까지 들어 있습니다. 제가 여주인공과 충돌한 여성해방론자가 적연인형의 집을 여주인공에게 성경 전도하는 전도부인처럼들이밀었다고 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소름까지 돋는군요.


한용운은 소설뿐만 아니라 대표작 님의 침묵에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한용운운은 시집 서문에서 당대 모던걸의 자유연애론과 정조 무용론에 대해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고 비판하고, 자유연애를 떠난 삶의 태도 또한 만사가 다 저의 좋아하는 대로 말한 것이요 행한 것이니 자유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자유연애니 여성해방이니 한다는 -한 사람들이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낙인찍고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것이 한용운의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용운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썼었는데, 현재 이미 당대의 고승대덕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또한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니 이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일뿐더러, 과거가 현재를 보는 거울로 작용할 수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는 점이 기쁩니다.


출처: 권보드래,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현실문화연구, 2003), pp. 251-253.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