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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 속 역사: "혼부라"란 말에 대하여 경성활극록



경성활극록 소설을 쓰며 "혼부라"라는 표현을 간간히 썼습니다. 이 말은 당시의 혼마치(본정), 현재의 충무로 거리를  양장을 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니는 세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의 탄생 배경에는 혼마치가 식민지 조선의 중심지 경성의 최대 번화가이자 "모-던"한 소비공간의 중심지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진고개로 불리던 혼마치는 조선 시대 한양에서는 그닥 중요한 공간이 아니었지만, 총독부 당국이 이 일대를 일본인을 위한 거리로 조성하면서 금융 및 상업 중심지로 거듭났습니다. 조선식산은행과 여러 보험회사들이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모-던"한 모습으로 들어섰고, 각종 화이트칼라 직종 종사자들이 근무하는 회사들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쓰코시 백화점, 조지아 백화점, 미나카이 백화점, 히라다 백화점 등 일본 백화점의 지점들이 문을 열고 카페(당시의 카페는 찻집이 아니라 유흥업소에 가까웠습니다)와 클럽, 댄스홀 같은 유흥업소들이 들어서며 일대 번화가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유흥업소에는 항상 야쿠자가 끼어들기 마련이었죠.

이에 따라 경성의 풍경은 청계천을 중심으로 부유한 중산층 이상 일본인이 살고 화려한 네온싸인이 반짝이는 "모-던"한 건물들이 들어선 청계촌 남쪽의 남촌과 상대적으로 조선인이 사는 주로 사는 동시에 전통적 건축양식을 보존한 북촌으로 갈렸습니다. 한 마디로 혼마치는 지금의 강남과도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북촌의 조선인들은 처음에는 혼마치 자체를 꺼렸지만,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모-던"하고 이국적인 풍경과 이전에는 듣도보도 못한 소비공간인 백화점 등에 대한 호기심으로 차츰 젊은 학생들이 혼마치에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나팔바지나 원피스 등 당대 유행하던 양장을 하고 혼마치를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쓰코시 백화점은 옥상에 정원을 만들고 커피숍을 열었는데 이는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메이지 유신 이후 개발되기 시작한 도쿄에서 먼저 있었습니다. 도쿄의 긴자(銀座)거리가 혼마치에 앞서 금융과 소비의 중심지인 번화가로 형성되었는데, 일본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긴자거리를 할일 없이 돌아다니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 현상이 시작된 겁니다. 이를 긴자의 "긴"(銀)과 일본말로 "헤멤" 또는 "어슬렁 어슬렁"인 "부라부라(ぶらぶら)"를 합쳐 "긴부라"(ぶら)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조선에 이식되어 "혼부라"(本ぶら)가 탄생하였습니다.

부유층 자제들은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하고 양장을 사 입으며 모던보이, 모던걸로 불리며 유행을 선도했고, 이를 중산층 이하 학생들이 선망하고 유행을 따라하면서 재정적 무리까지 감수하는 현상이 어느 정도는 신문지상에서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근면성실하지 않고 유행만 쫓는다는 비판이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나왔죠. 

정리하자면 혼부라는 새롭고 이국적인 소비공간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식민지 젊은이들이 소비욕망을 분출하고 해소하는 현상이었던 셈입니다. 

소설에서는 이 혼부라와 그 근원인 소비욕망에 대해 적잖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건데, 너무 도덕군자스러울려나요;;

엄복규, 「'서울 남촌' 100년의 역사를 걷는다」, 류보선 외 『서울의 인문학: 도시를 읽는 12가지 시선』(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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