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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반도 분단을 위해 소련침공에 손을 놓았다는 김어준의 주장과 이에 대한 고찰 8월의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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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링크에서 김어준이 고시로 유키코의 주장을 인용해 하는 말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고시로 유키코의 책을 본 적이 없고, 또 고시로가 어느 사료를 인용해 그런 주장을 하는지는 몰라서 넘기고 김어준의 말만 분석하겠습니다.

김어준의 말에서 맞는 부분은 "패전하던 1945년, 일본이 관할하고 있던 사할린을 미국이 아니라 소련에 넘김으로써 일본이 동북아에서 누려 왔던 기득권 모두를 미국에 넘기지 않고, 미국과 소련이 영내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도록 만들고자 했다는 겁니다."입니다. 실제 일본이 소련의 중재를 통해 영미와 협상한다는 외교전략을 택했는데, 그 근본목적이 바로 동북아에서 미국과 소련의 충돌을 유도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도는 대본영 내 기록으로 확인이 됩니다.

관련 논문 하나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1944년 9월 주 소련공사(公使) 모리시미 고로(守島伍郞)는 대소(對蘇)문제의 긴급 상담을 위해 도쿄에 소환되어 17일과 19일 우메주 육군참모총장과 회담하였는데, 여기에서 하타 히꼬사부로(秦彦三郞) 참모차장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일본의 약화는 장래의 소련 대 미국 영국의 balance of power에 소련에 불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련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1945년 5월 소련의 참전을 방지하기 위한 최고전쟁지도자회의에서 아나미 고래찌까(阿南惟幾) 육군대신은 “소련은 전후(戰後)에서 미국과 필히 대치하게 되는 관계로 일본을 약화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상당히 여유 있는 태도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일본은 전쟁이후 미국과 소련이 충돌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은 일본의 군사력을 필요하게 될 것을 믿고 있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일본은 전쟁말기에 소련에게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최영호, 「일본의 항복과 한반도 분단: 항복의 지연과 분단의 책임」, 『역사문화연구』제62집 (2017년 5월), pp.208-209.

이런 비슷한 논의는 대본영 내에서 계속되었습니다. 1945년 4월 29일에 참모본부 전쟁지도과장은 보고서 "금후의 대소시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의 종전협상은 일본의 국체를 무너트릴 것이니 유일의 방책은 소련의 공격을 "절대 회피"하며 소련에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양보하여 소련의 협조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군이 중국에서 철수하고 옌안의 중국공산당과 손을 잡아 중국에서 미국이 소련과 충돌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당시 해군 군령부차장이었던 유명한 제독 오자와 지사부로도 미국과 소련의 충돌을 유도하기 위한 구상을 하였는데, 오자와가 전후에 회상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3월경 군령부총장(해군참모총장)과 제1부장 등과 종전(終戰)의 방도를 수회에 걸쳐 이야기하였다. 그 이야기 가운데, 일본군을 중국본토에서 철수하여, 이 공허(空虛)의 북방지역에 소련군을, 그리고 남방에는 미국과 영국군을 침입시킨다면 이 양쪽[소련과 미국] 군대는 중국본토에서 대립하는 태세가 되어, 그 자리에 새로운 국제관계가 발전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관계는 우리의 종전에 유리한 정세를 조성할 것 아니겠는가 라는 착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계획은 5월 11-14일에 진행된 최고전쟁지도회의 "일소교섭요령"을 통해 승인되었습니다. "일소교섭요령"에 따르면 장래 소련이 미국과 대항할 관계로 발전할 것이니 일본, 소련, 중국이 단결하여 미국과 영국을 대항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1. 소련의 참전 방지, 2. 소련의 중립, 3. 일본과 소련이 단합하여 미국에 대항을 교섭목적으로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한 교섭요령은 우선 포츠머스조약과 일소기본조약을 폐지하고 아래 사항들을 소련에 양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 남사할린 반환 (참고문헌은 북사할린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기인 것 같습니다.)

2. 어업권해소

3. 쓰가루해협의 개방

4. 북만주의 모든 철도 양보

5. 내몽골(몽강자치연합정부)를 소련의 세력권으로 양보

6. 뤼순과 다렌의 소련 조차

즉 일본이 동북아에서 미국과 소련의 충돌을 꾀했고 사할린을 소련에 양도한다는 김어준의 말은 틀린 게 아닙니다. 소스로 삼은 코시로의 저서도 이 사료를 근간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어준이 틀린 것은, "일소교섭요령"에서 남만주와 한반도는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섭요령에서 대본영은 한반도는 일본이 "유보"하며 만주국에는 소련, 중국, 일본의 공동체를 세우겠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만주국과 한반도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시로가 다른 사료를 통해 한반도까지 소련이 진출하는 상황도 일본이 상정했음을 입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본영의 "대소교섭요령"만 보면 한반도는 해당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김어준이 가장 틀려먹은 것은 일본이 소련의 침공기도를 알면서도 방치했다는 것인데, 그건 "대소교섭요령"의 기본전제 자체를 아주 무시한 주장입니다. 교섭요령의 목적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소련의 침공을 방지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침공기도를 알았다면 이런 요령 자체가 작성될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어준 말 대로 소련군의 남하에 대비하지 않고 만주와 한반도로 소련군이 진격하는 상황을 유도하려 했다는 주장도 참 괴상합니다. 왜 복잡한 "침공유도"를 하고 더 간단하고 인명피해도 적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할양"은 안합니까?

게다가 그럴 의도면 어째서 소련군의 침공에 포위당한 관동군 단위부대들이 항복은 안하고 옥쇄하다 섬멸당합니까. -_-;; 사전에 철수 또는 항복지시가 내려왔겠죠. 게다가 그럴 의도면 국경수비병력이 국경에서 방어전을 치루고 주력은 만주 중부로 후퇴해 병력을 집중하여 소련군과 결전을 벌인다는 작전계획을 뭣하러 유지합니까 -_-

이 주장은 또한 소련군의 침공에 대한 대본영과 관동군 사령부의 대혼란을 무시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예 몰랐거나요. 가장 막으려던 사태인 소련 침공이 시작되자 대본영은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는 소련의 침공기도 자체를 몰랐다는 방증입니다.

결론은 김어준이 일본 아베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일종의 취사선택을 한 것 같다는 겁니다. 아니면 관련해 얄팍하게만 알아서 잘 몰랐거나요.

그러니까 김어준 씨에게 누가 『8월의 폭풍』좀 구매해 보내 주십쇼. 앞으로 출간될 하세가와 쓰요시 저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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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카시스 2019/02/23 14:02 # 답글

    그냥 일본을 공격한다가 저쪽 빠심에 잘 들어맞으니까 모든거에 끼워맞추는거라고밖엔..
  • 진보만세 2019/02/23 14:58 # 답글

    잘 봤습니다. 김어준은 사료 취사선택의 달인으로 예전부터 명성(..)이 드높던 자인지라.. 일본의 못이룬 전략은 오히려 소련의 스탈린이 맥아더와 트루먼을 상대로 한반도에서 제대로 써먹은 것 같네요. 미국을 끌어들여 중공과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가 어부지리를 취했던..

    ps. '일소교섭요령' 1항 - 북사할린 반환은 남사할린의 오기 아닌지요.
  • PKKA 2019/02/23 15:06 #

    논문 저자의 오기인 것 같습니다. 수정할게요.
  • 3인칭관찰자 2019/02/25 23:17 # 답글

    중국 대륙에 미국과 소련을 끌어들여 일본은 그들의 대립 속에서 어부지리를 노린다는 거군요. 서밤 연합군과 강화를 맺고 그들과 함께 반공십자군을 구축하여 최전선에 서서 소련과 싸우겠다... 는 나치 독일의 일부 인사들 발상이 생각납니다.

    김어준이야 뭐... 단지 저 양반이 하는 말이라면 철썩같이 진실이라 믿을 신도들이 많다는 건 씁쓸하기도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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