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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활극록』속 역사: 일본군의 독일 애호 경향 경성활극록

일본군이 메이지 유신 때부터 프로이센군의 교관 멕켈 등의 영향으로 프로이센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 때의 영향으로 일본 육군은 독일군을 매우 애호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독일 애호 경향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둘러싸고 육군 내에서 아무리 영일동맹이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원수진 것도 없고 이익이 상충하지도 않으며 가르쳐 준게 한둘이 아닌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육군에서도 그래도 영일동맹의 준수가 일본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더 많아서 결국 일본은 협상국으로서 독일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러한 독일 애호 경향은 독일령 산동반도를 공격한 칭다오 전투 때에도 계속되어서 일본군은 독일군에게 경의를 표했고 독일군 포로는 일본군에게 신사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뭐 그럴 수 있긴 하긴 하지만...


일본 육군은 협상국 국가들과의 공조 및 연락과 전투 관전을 통한 실전데이터 획득을 위해 적지 않은 양의 관전무관들을 서부전선에 파견했습니다. (아예 1개 사단을 파견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파견나간 무관들은 황당하게도 아군인 연합군을 응원하는 게 아닌 엄연히 적국인 독일군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군국주의 독일 제국이 황제과 군의 지도아래 단합되어서 군민이 일체되어 싸우고 있다고 칭송하고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민주주의 때문에 해이해져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고 폄하하는 보고서를 본국으로 계속 보냈습니다. 무관들은 서유럽의 민주주의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그게 군을 해치는 장본인이라고 믿으며 독일의 군국주의야말로 일본이 나아갈 길이라고 믿은 겁니다. 그 때문에 무관들 중에서는 독일 제국의 승리를 점치는 인사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독일 또한 일본이 자신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이라는 걸 알고 비밀리에 일본과의 단독강화를 추진하지만 침머만 사건 때 관련 외교전문이 덤으로 해독되는 바람에 단독강화는 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망하자 일본 무관들은 이럴 리가 없다고 순간 멘탈붕괴에 빠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일본 육군참모본부는 세계대전의 전훈을 수집한 『구주전쟁총서』를 발간하게 됩니다. 이 『구주전쟁총서』는 앞으로의 전쟁이 단기결전보다는 물량전, 화력전으로 갈 것이라는 현실적인 예측을 한 동시에 황당한 전훈을 도출해 냈습니다.


이 시리즈 집필에 참여한 관전무관들은 독일의 패망이 독일 군국주의의 문제가 있거나 민주주의가 군국주의보다 더 뛰어난 체재라서 패배한 것이 아닌, 군국주의 자체가 해이해져서 후방의 소요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독일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심각한 아전인수격 해석을 총서에 넣어버린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앞으로 장차전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군국주의를 철저히 강화해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구주전쟁총서』가 도출한 전훈 중 하나였습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형성된 일본의 민권운동과 민주화 움직임에 대한 군의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합니다.


출처: 박완, 「일본 육군의 '대전의 교훈' 형성 과정과 스토리텔링」, 『스토리&이미지텔링』(제6집, 2013, 12), pp.65-109.


덧글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01/26 00:45 # 답글

    이른바 '등 뒤의 칼' 논리도 수용했으려나요; 독일식 군국주의에 호감은 있었겠지만 전쟁중에도 그랬다니 좀 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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