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ККА Ставка 이글루스 지부

PKKA1918.egloos.com

포토로그



논픽션 『경성 트로이카』에 묘사된 경성의 빛과 그림자 기타 역사

* 소설 쓰며 참고문헌으로 삼은 도서에서 발췌

조선인들이 모여사는 뒷골목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했으나 일본인을 상대하는 거리는 노랑, 빨강, 녹색, 청색의 네온사인들이 반짝이며 밤거리를 수놓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간팜과 풍요로운 고급 상품들이 가난한 조선인들을 한껏 기죽게 했다.

상업주의를 상징하는 새로운 건축물이며 네온사인의 등장과 함께 인심도 변해 갔다. 한쪽에서는 돈이 넘쳐나 어떻게 굴릴까 고민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나빠졌다. 가장 빠르게 늘어가는 것은 전당포였따. 궁지에 몰린 조선인들이 무쇠 솥과 이불까지 들고 나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전당포 간판이 건물 지붕마다 붙어 있을 저도였다. 전당포는 어디나 월 칠 부의 이자를 받아 갔다. 일 년이면 이자가 원금과 맞먹는 고리대금이었다. 가난은 더 깊은 가난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늘어나는 부자들을 위한 고급 술집인 카페가 거리 모퉁이마다 자리잡기 시작했따. 서양시긍로 실내를 장식한 카페에는 월 명에서 수십명에 이르는 여급들이 양장에 단발머리를 하고 차와 술을 날랐다. 조선의 전통적인 향락 문화이던 기생제도는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져 가는 기생들과는 달리 까페 여급들은 점잖은 분위기 소에서 고급스런 윤락을 제공하는 새로운 문화로 등장하고 있었다. 종로의 '락원까페' 같은 곳에는 여급 숫자가 오십 명이 넘을 정도였다.

서양 문화의 유입과 함께 사람들의 행색도 바뀌어 갔다. 이십 년대만 해도 사람들의 복장은 조선이나 일본, 중국 같은 동양식에다가 서양식까지 뒤섞여 다양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서양식으로 통일되어 갔다. 머리 모양도 바뀌어 갔다. 일제의 강요가 아니더라도 남자들이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상고머리를 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으며 여자들도 허리까지 땋은 긴 머리칼을 싹둑싹둑 잘라내기 시작했다. 깡총한 단발머리에 송곳 같은 뒤축을 단 뾰족구두에 실크 스타킹을 신은 모던 걸들이 양산을 펴든 채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나팔바지라는 새로운 유행이 도시 청년들을 유혹했다. 빗자루처럼 통 넓은 나팔바지에 네모진 가게 안경을 쓰고 넓은 넥타이를 맨 모던 보이들이 모던 걸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조선인들에게 유행이란 여전히 낯선 취미일 뿐이었다. 단발머리나 파마는 까페 여급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유한마담이나 부유한 청년들의 신식 복장은 손가락들의 대상이었다. 유명한 여성 사회주의자 중에도 단발머리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를 이고 아무데서나 담배를 물고 다니는 이들이 있어 맑스걸이니 레닌걸이니 하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몇몇에 불과했다.

(중략)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부조화 속의 질서를 이룬 경성은 아름답고 우아한 도시였지만, 그 뒷골목에 사는 조선인 서민들의 삶은 너무 비참했따. 한쪽에는 빨간 벽돌을 쌓거나 남부유럽 식으로 석회를 바르고 황토기와를 올린 이층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갓 생산된 미제 승용차에 피아노와 칠십 원 짜리 라디오에 백 원이 넘는 사진기까지 갖추고 호화롭게 살아가는 반면, 그 반대편에는 반쯤 쓰러진 초막의 토굴같이 침침한 단칸방에서 찌그러진 냄비 한 개, 귀 떨어진 항아리, 양철 대야와 서유상자를 세간이라고 들여놓고 한 달 월급 십오 원으로 온 가족이 먹고살았다. 손님이 와도 끓여 내올 쌀죽은커녕 상에 올려놓을 밥그릇과 수저조차 없는 살림이었다. 도시는 번영하고 있었으나 서민들의 삶은 악화되기만 했다.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 pp. 127-31.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