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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작전술이란 무엇인가?-2, 스베친의 작전술 정의 소비에트 작전술 발전사

스베친, 그는 누구인가?


작전술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 군사술의 체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스베친(Александр Андреевич Свечин)은 제정 러시아 말기와 소련 초기에 활동한 군인이자 군사이론가였다. 


스베친은 1878년 8월 17일에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제정 러시아군 장교인 안드레이 스베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형 또한 제정 러시아군의 장교였다. 스베친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년 군사학교를 이수한 후, 1897년 미하일로프 포병학교를 졸업하여 제43 포병 여단에서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스베친은 니콜라옙스카야 참모대학에서 공부했으며, 1904년에 러일전쟁에 참여했다. 스베친은 이 시기에 제22 동시베리아 연대에서 중대장을 역임하고, 제16군단 제3 만주 사단의 참모장교로 임무를 수행했으며 종전 이후에는 러일전쟁에 관한 회고록을 쓰면서 군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스베친은 여러 군사 분야에 대한 저술활동을 계속해 나갔다.1 이 시기 스베친은 러일전쟁에서 제정 러시아군의 군사행동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당대 참모장교들이 공유한 당대 러시아군에 대한 강한 비판적 자세와 군의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2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베친은 처음에는 최고사령부의 참모장교로 임명되었고, 1915년 7월부터 1917년 1월까지 제6 핀란드 소총병 연대장, 1917년 1월에는 독립 흑해 해안사단장, 동년 5월에는 제5군 참모장이 되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스베친의 계급은 소장이었다. 


1917년 말에 혁명이 발발하고 혁명 정부의 군대인 노동자-농민의 붉은 군대(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 РККА)가 구체제의 장교단을 군사전문가로 영입하자, 스베친도 붉은 군대에 가담했다. 붉은 군대에 가담한 스베친은 1918년 3월에 스몰렌스크 군관구의 정치위원에 임명되었고 이틀 후에 스몰렌스크 군관구 주임이 되어 3개 사단을 창설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18년 8월에는 임시로 전 러시아 주참모부의 참모장이 되었고, 11월에는 새로 참설된 붉은 군대 군사대학의 교관직을 수행하였고, 1919-1922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훈을 연구하는 군사사 위원회에 위원장직을 겸했다. 이후 스베친은 1924년에 군사대학의 군사사 및 전략학부 주임교수가 되었다.3  그리고 바로 이때, 스베친은 작전술이라는 개념을 군사술의 역사에서 최초로 만들었다. 





스베친의 작전술 정의



"군사술을 전략과 전술로 분류하는 낡은 분류는 현대에는 불합리하게 되었다."

-스베친



스베친은 군사대학의 군사사 및 전략학부의 주임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1924년에 최초로 작전술(Оперативное искусство)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스베친은 1924년 11월에 한 "군사술의 통합적 이해"(Интегральное Понимание Во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라는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략과 전술은 중간의 영역인 작전술에 의해 갈라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군사술을 전략과 전술로 분류하는 낡은 분류는 현대에는 불합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분류의 기반인 결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군사술을 분류하는 그러한 영역 각각이 확실한 내부의 통합의 영역을 포함해야 한다고 믿는다. (중략) 전술은 현대 전장의 실상을 다루는 영역이고, 작전술은 작전의 전체 기준에서 비롯된 전술적 활동을 작전으로 조직하고 나누는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전쟁의 정치적 목표의 달성을 위한 작전의 집합의 과업은 전략에게 있다."4


스베친은 이 강의에서 말한 것을 그의 대표 저작이자 작전술의 탄생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인 『전략』(Стратегия)에서 확대시켰다. 스베친은 우선 군사술의 역할에 대해 대해 말했다. 


"군사술은 넓게 보면 군사 계통에서 다음과 같은 모든 부분을 포함한다. 1) 전쟁에서 쓰이는 모든 무기에 대한 연구와 방어 요새화에 대한 연구; 2) 군사 지리 연구와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들의 자원 소비와 사회 경향 평가, 그리고 가능한 군사 작전 전구 연구; 3) 군대의 조직적 측면인 군사 행정 연구, 군수 행정 연구, 마지막으로 4) 군사 작전 수행 연구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끝에서 군사 기술적 주제는 군사술의 기본적인 요소에서 첫 번째 항목을 차지했다. 군사작전 수행의 기술은 적은 수의 군사사가들만 연구했다. 군사작전 수행을 연구한 인물들은 주로 공식적이고 기초적인 주제인 부대 편성, 재편성, 전투 대형을 다루었고 매일 하는 군사 훈련으로서의 전술의 과정으로 분석했다."5


그리고 스베친은 여기서 말한 "군사작전 수행"과 연관된 최근의 주제들이 "더 복잡해지고 심오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측면이 이제 광범위하게 되었고 "군사작전 수행을 군사술의 단어로 만드는 걸 고려하기 때문에" 중요해졌다고 말했다.6


그리고 스베친은 "군사작전 수행의 기술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항목으로 명확한 경계를 그을 수 없다. 군사작전 수행의 기술은 전선군과 야전군의 임무와 소규모 수색 정찰의 임무 할당 전체를 전부 포함한다"라고 말하며 그걸 전체로서 연구하는건 어려운 관계로 군사작전 수행의 기술을 군사적 상황의 몇몇 개별적인 부분으로 나누는 게 전적으로 합리적일 것이라고 보았다.7


그에 따라 스베친은 군사작전 수행의 기술을 "전쟁수행의 기술과 전투 수행의 기술에서 분리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여기서 전쟁수행의 기술이 전략이고, 전투수행의 기술이 전술이라는 걸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그래서 "현대 전투의 필요에 따라 현대 작전과 전쟁은 군사 분야의 명확한 분류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기초를 형성하는 세 개의 명확한 단계로 구성된다."8


우선 스베친은 전술에 대해 말했다. 


"전술은 군사술의 다른 요소보다 전투의 필요에 더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전투는 특정한 장비, 특정한 국가의 문화적 조건, 특정 군사 작전 전구와 특정한 전쟁 강도, 현대 전장의 실상에 기반한 특정한 요소로 구성된걸 필요로 한다. 전술은 특정한 기술적 행동을 전투의 종류로 통합시키고 모든 군사 장비, 조직의 기준들, 부대의 무장과 교육, 부대의 이동과 휴식, 전투의 필요에 일치하는 수색과 보안을 전투의 필요에 맞춰 합리화하려 한다. 전술 이론은  현대 전투 조건에서 나타나는 모든 측면을 독립해서 바라보는 것보다 통합하여 바라보는 기술적 주제(부대 이동 기술 등) 이상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전술이 핵심을 전투 상황에 장비를 적용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이전의 정의로 전술을 좁게 볼 것이다. 전술의 낡은 정의는 주요 전투 개념에 기반하고 있고 이런 전투 수행의 술은 전술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주요 전투는 실제로 없다. 전투 작전은 한 작전을 구성하는 여러 독립된 전투들로서 시공간적으로 분산되었다. 전술은 같은 도로로 이동하는 부대 전개를 따르는 개별적인 전투에만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래서 전술은 사단보다 더 큰 제대의 조직 연구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작전 연구는 필요한데 사단은 개별적인 군종 내에서 가장 작은 조직이고 그 장비에서 그 점이 완전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병 연대 같은 소규모 부대 작전 연구에서 우리는 전술을 고려해야 하는데 전투가 단지 보병 부대의 단일한 행동이 아니라 적 전체를 상대하는 우리 인력과 장비의 합동 작전이라는걸 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9


그리고 전술에 대한 정의에 맥락에서 연결되면서, 작전술이 여기서 정의되고 해석되었다. 



"결국 전술적 창의성은 작전술의 지배를 받는다.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 있을 수 없으며 한 작전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일 뿐이다. 오직 드문 경우 궁극적인 목표를 단일 전투에서의 전투 작전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궁극적 목표로 가는 길은 잠깐의 정지나 더 오랜 정지로 분리되는 일련의 작전들로 쪼개진다. 각각의 작전들은 전구 지역의 차이와 한 전력이 일시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중간 목표간의 차이로 일어난다. 우리는 만약 부대의 노력이 특정 군사작전 전구에서 어떠한 중단도 없이 확실한 중간 목표를 달성하는데 직접 집중된다면 작전을 전쟁의 수행이라 부른다. 작전은 전적으로 다른 행동들의 집합체다. 그 행동들은 작전 계획 작성; 군수 지원 준비; 작전 시작 지점에서 전력의 집중; 방어 요새화 구축; 행군; 적의 일부를 포위하거나 파괴하거나 후퇴시키기 위한 전투들로 적을 직접 포위하거나 중요한 돌파의 결과를 가져오고, 보급선이나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장악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전투를 포함한다. 전술과 행정은 작전술의 요소고 작전의 확대 성공은 군사력에 의한 개별적인 전술적 문제의 성공적인 해결과 공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중단없는 작전 수행에 필요한 물질적 요소에 달려 있다. 작전 목표의 기초에서 작전술은 모든 일련의 전술적 임무를 시작하고 수많은 군수 보급 소요를 시작한다. 작전술은 가능한 물질적 요소에 달려 있는 작전 수행의 기본적인 노선, 다른 전술적 임무들의 해결을 할당할 시간, 특정 전선에서 전투를 위한 전력 전개, 마지막으로 작전 자체의 특성을 지시한다. 우리는 전장의 객관적인 상황을 능가하는 의지의 우위를 인정할 수 없다. 전투는 작전의 전체적인 측면과 계획한 작전의 특성을 반영하는 전체적인 부분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10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일련의 작전들을 시행하는 작전수행의 술, 이것이 스베친이 말한 작전술이었다. 스베친은 그 뒤에 "기술로서의 전략"을 말하면서 전략과 작전술간의 역할을 말했다. 


"개별적인 작전의 성공은 군사 작전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중략) 기술로서의 전략은 전쟁 준비와 군사력을 통한 전쟁 목표 달성을 위한 작전들의 집단화가 종합된 것이다. 전략은 군사력의 운용과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의 모든 자원을 운용하는 문제들을 결정한다. 작전술이 중간의 후방(전선 보급)의 가능성을 계산해야 한다면, 전략은 국가의 경제 및 정치적 능력을 반영하는 아군과 적군의 전체 후방을 계산해야 한다. 전략가가 서로 다른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 행정적, 기술적 요소에 달린 전쟁의 본질을 정화하게 평가하면 성공할 것이다. 전략은 작전술에 무관심할 수 없다. 전략가는 전쟁의 본질을 군사 행동에서 분리된 추상적인 개념들로 다룰 수 없다. 전략은 작전 수행의 실제 종류들, 작전의 크기와 강도, 작전의 전개와 작전에 할당된 상대적인 중요성을 전쟁의 가능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하부로 두어야 한다. 이리하여 전략은 작전술의 기본적인 방향들을 지시하고 만약 특정한 작전이 극히 중요하다면, 전략가는 작전을 직접 지휘해야 한다. 그러나 전술과 작전술 전문가들처럼, 전략가는 다른 영역에서 완전히 독립될 수 없다. 전술이 작전술의 연장이고 작전술이 전략의 연장인 것처럼 전략은 정치의 연장이다. 우리 연구의 특별한 부분은 정치와 전략의 관계와 정치를 따르는 전략이다.11


스베친은 서문에서 정리한 전술-작전술-전략의 의미와 관계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스베친은 책의 제3장 제3절인 "제한된 목표를 가진 작전"에서 작전과 작전술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전략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말한다. 


"작전수행의 연구 방법은 전략보다는 작전술의 일이다. (중략) 전략은 자신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합동작전으로서의 군사작전의 수행의 과업을 결정하고 그건 작전의 목표에 대한 관심일 뿐만이 아니라 그걸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필요를 만든다."12


즉, 작전술은 전략의 하부에 있고, 전략은 작전술의 과업과 방법을 결정한다. 그리고 스베친은 전략, 작전술, 전술과의 관계를 한줄로 정리했다. 


"전술은 작전술 차원의 도약을 위한 발판들을 만들어 주며, 전략은 그 길의 방향을 지시한다."13


그렇다면 스베친이 계속 말한 "작전", 계속해서 "전쟁"이나 "전투"와는 별개의 영역이자 전혀 다른 의미인 것처럼 언급되는 작전은 무엇인가? 스베친은 이렇게 정의했다. 


"군사술에서 작전은 전략이 결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걸 목표로 하는 서로 다른 행동들의 합동을 의미한다."14


즉, 스베친의 작전술에 대한 정의와 논의는 그러한 작전에 대한 정의에서 기인한다. 작전술은 작전수행의 기술이자, 전쟁수행의 기술인 전략과 전투수행의 기술인 전술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자 전략과 전술 사이에 있는 중간의 영역이고, 작전수행의 연구방법이다. 작전술은 전략의 지도에 따라 작전을 구상하고, 전술이 만든 발판에 따라 도약한다. 


스베친의 이러한 정리는 사실 이와 같은 것을 처음 보는 독자가 금방 이해하기는 어렵다. 스베친의 정의에 대해서는 1924년에 군사대학에서 스베친의 강의를 들었던 전 제정 러시아군 대위이자 붉은 군대의 장교인 니콜라이 예피모비치 바르폴로메예프(Николай Ефимович варфоломеев)가 더 말끔하게 정리했다. 


바르폴로메예프는 1928년에 당시 군의 간행물인 『전쟁과 혁명』(Война и революция)에 기고한 글 "학문적 공식에서의 전략"(Стратегия в академической постановке)에서 작전술이 탄생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최근의 과거로 돌아가 보면 전술은 교전의 연구로 이해되었다. 나폴레옹 시대에 전투와 교전은 본질적으로 같았고 전략은 교전을 시작하면서 전술에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교전은 이제 양측에서 일어나는 전투들의 집단이 되었고 시공간상 면에서 상대적으로 제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략은 야전에서 일어나는 교전 밖의 군사력 사용으로 "군사 행동 전구의 전술"이 되었다. 이 상황은 20세기가 시작(러일전쟁)되며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수백만의 인력과 수백만의 장비를 갖춘 대규모 군대가 나타났고 이런 점들은 철도와 차량을 이용한 기동이 등장함에 따라 전선과 종심은 수백에서 수천 Km 가 되었으며 기동은 이전처럼 교전 중에 자유롭지 못했고 전쟁 초기의 전력 전개에서 실수를 범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부대 지휘는 엄청나게 복잡해졌고 유일한 총사령관의 능력 밖을 넘어섰다. 교전은 개별적인 부분으로 분리되었고 전투는 교전의 부분으로 교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전투는 교전과의 경계가 부정확해졌고 과거의 교전은 현대의 "작전"이 되었다. 작전 연구는 전술의 틀에서 나왔고 그 밀도는 개별적인 전투의 연구였지 집단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집단적인 전투에서 현대 작전은 복잡한 행동이었다. 작전은 전역의 시기에서 달성해야 하는 궁극적인 전체 목표를 직접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군사 행동 전구에서 일어나는 기동과 전투의 총체가 되었다. 전술은 작전의 수행이 아니다. 이제 작전은 작전술의 영역이다. 그래서 전략/전술의 틀은 이제 새로운 틀이 되었다."15


그리고 바르폴로메예프는 이렇게 정리했다. 


"전술/전투-작전술/작전-전략/전쟁"16


그리고 군사술의 세 요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하여 전투는 작전의 수단이고, 전술은 작전술의 요소다. 작전은 전략의 수단이고, 작전술은 전략의 요소다."17


이렇게 하여 1924-26년 동안 소련군에서 작전술이 세계 최초로 탄생했고, 전략과 전술간의 관계가 규명된 것이다. 스베친은 1928년판 『소비에트 대백과사전』(Большая Советская Энциклопедия)에서 작전술 항목을 작성했고 여기서도 작전술이 전략과 전술과는 구분되는 또 다른 영역임을 명시했다.18 스베친이 작전술을 설파한 이후부터 작전술은 소련군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자 사실상 공식적인 개념이 된 것이다.19



  1. 장문종, 「스베친(Александр Андреевич Свечин)의 소모전략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p. 21. 장문종은 이 논문에서 국내 연구자 중 최초로 스베친을 조명했다.
  2. 여기에 대해서는 Jacob W. Kipp, "General-Major A. A. Svechin and Modern Warare: Hilitary History and Military Theory", in Александр А. Свечин, Стратегия (Москва: Военный вестник, 1927), translated and edit by Kent E. Lee, Strategy (Minneapolis, Minnesota: East View Publishers, 1992), p. 25-31을 보라.
  3. 장문종, p, 21-23; 이때 스베친의 활동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Kipp, pp. 31-37을 보라.
  4. А.А. Свечин, Интегральное Понимание Военного Искусства, Красные Зори (1924), no. 11(22), p. 23, Richard W. Harrison, The Development of Russian-Soviet Operational Art, 1904-1937, And the Imperial Legacy in Soviet Military Thought, (PhD Dissertation: Department of War Studies, King's College Londong, 1994) p. 175-176에서 재인용.
  5. Свечин, p. 67.
  6. Ibid.
  7. Ibid.
  8. Ibid., p. 68.
  9. Ibid.
  10. Ibid., 68-69.
  11. Ibid., p. 69-70.
  12. Ibid., p. 269.
  13. Ibid.
  14. Ibid.
  15. Н. варфоломеев, "Стратегия в академической постановке", Война и революция, Бук 11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1928), in translated by Herold W. Orenstein, Sellected Readings in the History of Soviet Operational Art (Fort Leavenwoth, Kansas: Soviet Amry Studies Office, 1990), p. 4.
  16. Ibid.
  17. Ibid.
  18. Harrison, 176-177.
  19. 국내 문건들은 1987년에 작전술을 소개한 육군의 교범 이래로 하나같이 1965년에 출간된 소련군 기본군사용어 사전에 작전술이 명기된걸 근거로 소련군이 1965년에 작전술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육군대학 전략학처 작전술과, p. 239; 노양규, p. 31을 보라. 그러나 스베친의 작전술 정의 이후 소련군에서 작전술 용어가 거의 공식적으로 쓰였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와 같은 서술은 상당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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