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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술에 관한 테제들 군사학 잡설

* 2011년부터 번역하고 봐 온 것들 보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 본 겁니다. 마지막은 패러디로. 



1. 작전술은 군사술의 한 영역으로 전략과 전술의 중간의 영역이다. 작전술은 작전 수행에 대한 이론과 실제이며 최소 군단에서(경우에 따라 사단) 최대 야전군에 이르는 대규모 제대의 군사행동에 대한 이론과 실제이다. 작전술은 작전과 관련된 법칙, 본질 및 특성의 연구; 지상, 해상;항공, 우주에서의 전투 작전을 준비 및 실행하기 이한 수단을 창출; 대규모 제대와 제대가 수행해야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 결정; 전투시 지속적인 협조; 수색정찰 및 지휘통제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결정하고 그 수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편제와 조직을 담당한다. 


2. 작전술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와 각국 군대들의 작전술에 대한 정의는 모두 소련군의 알렉산드르 스베친이 1924년에 내리고 1926년에 저서 『전략』을 통해 명문화한 작전술 정의의 파생이다. 스베친은 세계에서 최초로 작전술을 명문화하고 전략, 작전술, 전술의 관계를 발견하고 말하였으며 소련군은 세계에서 최초로 작전술을 명문화했다.


3. 작전술은 작전 수행의 이론과 실제인데 여기서 말하는 '작전'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계획된 군사행동'이 아니라 야전군 수준(현대는 군단급 수준) 이상의 군사행동을 말한다. 이러한 용어의 차이는 제정 러시아군의 작전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작전술을 이해하려면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4. 따라서 소련군의 바르폴로메예프의 정리에 따르면 이와 같다. 

전략=전쟁의 수행

작전술=작전의 수행

전술=전투의 수행


5. 스베친은 작전술을 전략과 전술 사이에 있는 중간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만약 군대의 노력이 특정 군사 작전 전구에서 어떠한 중단도 없이 확실한 중간 목표를 달성하는데 직접 집중된다면 그건 전략의 영역이 된다. 


6. 작전술은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전과 대규모 군대의 산물이며, 전문화된 참모제도의 산물이자, 군사를 단순한 기술(Art)만이 아닌 학문(Science)으로 보는 학문적 경향과 그걸 연구한 상급 군사교육기관의 탄생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군사술은 아직 전략과 전술만으로 해석할 수 있었고 작전술이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 이 시기에 용어 '작전'은 전략의  일부로만 간주되었다.


7. 작전을 전쟁과 전투와 구분되는 영역으로 본 사람은 프로이센/독일의 헬무트 폰 몰트케다. 몰트케는 작전을 전략과 구분되는 또 다른 영역이라 보고 '작전수행'과 '작전적 지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여기에 독일의 군사이론가 지기스문트 폰 슐리흐팅은 전략과 전술의 중간으로 '작전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8. 그러나 독일 군사과학이 작전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전략의 일부로만 바라보고 군사술의 새로운 영역으로 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작전술 개념을 최초로 명문화한 군대는 소련군이 되었다.


9. 제정 러시아군의 개혁자들은 슐리흐팅 등의 독일군의 작전 이론을 받아들였고 러시아의 상황에 맞게 발전시키려 시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의 대량전쟁과 총력전을 겪고 혁명 이후 신생 붉은 군대에 가담해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새로운 해석의 틀 아래서 군사행동을 연구했다. 스베친의 작전술 개념의 등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기인했다.


10. 작전술이 현대 서구의 대중에게 익숙한 용어가 아닌 이유는 미군을 비롯한 서방의 군대들이 작전술의 발견에 도달하지 못했고, 군사를 학문으로 볼 지성적 기반이 옅거나 반지성주의가 강했으며, 참모의 전문성이 부족했고, 작전술적 수준의 군사행동의 경험이 많이 없었으며, 반공주의와 적대감 때문에 소련군의 정의를 받아들이길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이 1986년에 작전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작전술은 서구 군대에서도 보편적인 개념이 되었다.


11. 작전술은 전술을 지배한다. 전술의 합이 작전술이 아니라 전술이 작전술 안에 있다. 그러므로 전투에서의 승리의 합이 작전에서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전투에서의 패배가 작전에서의 승리와 연관이 없을 수 있다. 단, 전투가 작전의 승리에 결정적인 전투면, 전술적 승리가 작전술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 


12. 작전술은 전략의 지배를 받는다. 전술의 합이 작전술이 아니듯이 작전술의 합이 전략이 아니다. 연속적인 작전술적 승리가 전략적 승리와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작전술은 전략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야 한다. 단, 작전술적 우세가 전략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으며, 전략이 잘못되면 작전술이 전략의 지도를 따르기 힘들다. 


13. 전술에 직감이 필요하다면 작전술은 지성이 더 필요하며 지성에 기반을 둔 영역이다. 작전술은 그 때문에 참모대학이나 군사대학에서 교육시키고 연구해야 하는 분야다.


14. 작전술은 수행 제대의 크기와 함께 작전 수행의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결정된다. 군사 작전 전구가 협소해 계속해서 전술적 전투만 일어난다면, 그건 작전술적 제대가 투입되어도 작전술이라고 할 수 없다.


15. 작전술은 소모전과 진지전에서는 역할이 드러나지 않는다. 작전술은 기동전에서 역할이 커진다. 그 때문에 진지전의 양상을 극복하려면 전술의 승리를 작전술의 승리로 확대시켜야 한다. 


16. 작전술을 명문화하거나 인식하지 않은 시대나 군대의 군사행동은 전략과 전술로만 해석해도 괜찮다. 하지만 그것에 작전술을 넣는다면 더 풍부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17. 서구의 군사학자들은 오랫동안 군사술을 전략과 전술로만 '해석'해왔을 뿐이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작전술을 넣어 '변혁'시키는 일이다. 


덧글

  • 길 잃은 어린양 2015/03/23 13:33 # 삭제 답글

    음. 읽다보니 의문이 생기는데요, 예를 들어 15번 같은 경우 농담이십니까 진담이십니까? 2차대전에서 소련군의 기동전 수행을 보면 소모전적인 경향이 아주 농후하게 드러나고 하인츠 프리서도 이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1945년의 전쟁 말기에 있었던 몇개의 작전을 제외하면 1944년 말까지도 소련군은 이런 소모전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런건 소련이나 러시아의 군사사상으로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 PKKA 2015/03/23 13:41 #

    저는 1차대전의 서부전선을 생각한 겁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15/03/23 13:45 # 삭제 답글

    그런데 정작 2차대전 당시에는 1차대전 당시의 서부전선 보다 더 큰 규모의 소모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전간기 소련 군사문헌을 읽다가 실제 전쟁에서의 작전 진행 사례를 보면 참 난감하기 짝이없더라고요.
  • PKKA 2015/03/23 14:38 #

    저는 얼마나 많이 손실했냐보다는 얼마나 돌파하고 또 그 돌파로 얼마나 진격했는지를 먼저 봐서 그렇습니다. 진지전 양상에 더 중점을 두고 생각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길 잃은 어린양 2015/03/23 14:41 # 삭제

    저는 그게 의문인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손실을 해서 돌파를 이뤄낸다는게 1차대전 당시의 소모전과 무슨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1차대전 말기에도 독일군이 소모를 감당하지 못하니까 결국 전선이 붕괴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2차대전 당시에도 소련군이 성공적으로 돌파를 이뤄낸 사례는 대부분 독일군의 소모가 극심했던 43~45년에 집중되어 있거든요. 독일군이 예비대를 충분히 보유한 상황에서 소련군이 돌파와 확대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 PKKA 2015/03/23 14:41 #

    물론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
  • 길 잃은 어린양 2015/03/23 15:02 # 삭제 답글

    제 질문에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요즘 2차대전 쪽 자료들을 읽으면서 자주 하는 고민이어서 한번 여쭤봤습니다. 요 몇년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쪽이 전략단위의 소모와 동원체제라서요.
  • PKKA 2015/03/23 15:13 #

    저는 본디 저보다 다 오래 공부하시고 고민하신 분들께 존경을 바치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두 서계대전의 차이는 돌파구 안에 들어갈 게 있냐는 차이가 되겠습니다
  • 모아김 2015/04/18 19:24 # 삭제 답글

    소모를 하더라도 돌파구를 만들었는데 작전술적 개념의 부재 때문에 돌파구에 들어갈 제대를 투입할 생각을 못했고 이게 일차세계대전의 참호전의 양상을 나타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번의 전술적인 승리가 아닌 일련의 전술적인 승리를 연결하는 작전술이 필요하고 이러한 작전술을 적용하는데 덩치가 큰 군대가 기동전을 수행하는 종심전투가 필요했다...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 PKKA 2015/04/18 19:58 #

    1차 대전때도 형성된 돌파구로 전과확대를 할 전력을 투입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말씀하신 데로 작전술의 부재로 이걸 어떻게 전과확대를 할지 명확한 개념이 없었고, 그리고 그러한 전과확대의 속도보다 방자의 예비대가 투입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에 교착 상태가 계속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 모아김 2015/04/18 20:15 # 삭제 답글

    작전술적 개념이 게릴라전이나 반게릴라전에 효과적으로 적용된 예가 어떤게 있을까요?
  • PKKA 2015/04/18 20:28 #

    딱히요. 스베친의 기준으로 볼때 그건 거의 전술의 영역입니다.
  • 모아김 2015/04/18 20:50 # 삭제 답글

    비전문가라서 잘 모르겠는데 전술수준이라 하기도 힘든 산발적인 봉기나 교란을 단계적으로 연쇄증폭시켜 전국적인 항쟁으로 만들어서 정규전 병력을 패퇴시킨 사례나 이러한 동시다발적 봉기를 점-선-면의 관점에서 제압한 사례가 있다면 작전술적 제대 규모가 아니라고 해도 작전술적 개념의 연장선이라 볼수는 없는 건가요?
  • PKKA 2015/04/18 20:50 #

    저도 비정규전은 몰라서 딱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 지나가는 사람 2017/04/29 18:47 # 삭제

    흠 후자라면 프룬제가 타지기스탄에서 비스마치 봉기를 진압한것 우크라이나에서 마흐노군을 패배시킨것을 알아보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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