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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 작전의 배경과 이론 썰 군사학 잡설






종심 작전이 등장한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입니다. 당시 주요 전선이었던 서부 전선의 상황은 1918년 이전까지는 대체로 이랬습니다.

우선 장기전의 난국을 타개하려고 연합군이나 독일군이 전선 내의 취약지점을 찾고 그곳으로 주공을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전력이 주공 축선으로 집중됩니다. 그 때문에 대규모의 병력 및 장비의 이동이 개시되는데 이 규모가 너무 커서 움직임을 완전히 숨기는게 불가능해서 적의 정보 자산이 전력 이동을 관측할 수가 있고 그 때문에 방자는 적 예상 주공 축선의 방어 전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세는 막대한 공격 준비 사격과 함께 시작됩니다. 방자는 공자의 의도를 공세 전에 눈치채지 못하였더라도 이 공격 준비 사격 덕분에 공자의 의도를 알아차리면 종심 깊숙히 배치된 예비대를 적 주공 축선으로 이동시킵니다. 이 예비대에 공자가 손상을 입할 방법은 사실상 없었고 유일하게 예비대가 이동하는 방어 종심까지 이동해 화력을 투사할 수 있던 수단인 항공기는 숫자와 성능이 제한되었습니다.

발달된 포병 화력으로 공자는 방자의 방어 전단 2~3 km 정도는 무력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고 포격 종료 후 참호에서 준비하고 있던 보병들과 전투공병들이 뛰쳐나와 무인지대를 행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포병 화력의 사거리 한계 때문에 보병들은 적 종심으로 진격할수록 아군 포병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지고, 또 지원을 해 줘야 하는 포병들은 방열한 야포들의 발톱을 뜯어내고 이동 준비를 하면서 진격하는 보병을 지원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소요해야 했습니다. 또 미처 제압이 안된 적 화점이 있는데 아군 포병 화망은 포격 시간표에 따라 멀찌감치 가버린 끔찍한 상황도 직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희생을 치러가며 적 방어 종심을 어느 정도 돌파한 것까진 좋습니다. 그후에는 더 큰 문제가 닥쳐옵니다. 방자의 방어 종심에서 달려온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작전술적, 전술적 예비대가 몰려오는 겁니다. 이미 적 방어 종심을 걷어 내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공자의 전력은 이 예비대를 상대로 공세를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공자는 후속 작전을 시행하기에 용이한 교두보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어를 취해야 하고 잘 하면 그 자리에서 버티는 데 성공해 어느 정도 후속 공세를 위한 교두보를 형성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애써 점령한 적 방어 진지들을 버리고 후퇴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1918년까지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양측이 교착 상태를 타개할 별의별 방법을 시도하는게 절정에 달한 1918년에는 그 결실이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루덴도로프는 춘계 대공세에 적진 침투를 전문으로 하는 폭풍부대의 침투와 적 화점 우회 및 보병과 포병간의 유기적인 제병협동을 골자로 하는 폭풍부대 전술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마침내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루덴도로프는 결국 여러가지 원인으로 전술적 성공들을 작전술적-전략적으로 확대시키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은 독일군의 대공세를 버텨낸 이후 전차를 대규모로 전술적으로 투입하며 마침내 4개월 동안 100 km 진격이라는 서부전선 최대의 전과를 올리며 독일 본토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이전의 알렝 비탈로 대표되는 공세 지상주의 사상이 재앙의 근원이었다고 보고 또 화력의 발전으로 방어가 계속해서 공세보다 강력할 것으로 보아 더 방어적인 교리에 치중하게 되었고 독일군에서도 반쯤은 마찬가지의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소련군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소련 성립 이전의 제정 러시아군은 상대적으로 적은 독일군의 규모와 광대한 전선, 오스트리아군의 취약함 때문에 서부 전선같은 밀집된 참호선이 형성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탄넨베르크 전투, 고를리체 전투, 리가 전투 등 지속적으로 기동전의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성공의 절정은 1916년의 브루실로프 공세로 공세를 지휘한 러시아 남서 전선군 사령관 브루실로프는 여기서 전혀 새로운 양상을 만들었습니다. 

브루실로프는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의 실패한 공세들을 분석해 공세 실패 원인 중 하나로 공세를 준비하면서 전력의 움직임을 은폐하는데 실패했고 준비 포격을 하면서 적에게 공세를 경고하는 격이 되어버렸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때문에 브루실로프는 공세를 최초로 두 개 제파로 나눴습니다. 제1 제파는 전선군 전체 전선에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오스트리아군이 러시아군의 주공이 어딘지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게 목적이었고 제2 제파는 종심 깊숙히 숨어서 은밀히 전력을 집중한 뒤 공세가 계시되면 주공 축선에 투입될 것이었습니다. 브루실로프의 계획은 적중하여 오스트리아군은 러시아군의 주공이 어디인지 파악하지 못해 혼란에 빠져버렸고 그리고 브루실로프의 주공은 오스트리아군의 취약 지점을 강타해 일시적으로 전선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햇습니다. 그러나 브루실로프는 돌파구 양 측면의 오스트리아군이 돌파구를 역으로 포위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공세를 지속하길 망설였고 그 동안 오스트리아군은 시간을 벌었으며 독일군에서도 지원을 보내 주었습니다. 브루실로프는 1918년 이전까지 1차 세계대전의 공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작전술적 승리를 전략적으로 확대시키지 못했습니다. 동부전선은 서부전선보다 더 유동적이었지만, 결국 양쪽 다 전략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동부전선의 이런 유동적인 양상은 적백내전에서 더 크게 드러났습니다. 광대한 러시아 땅에서 붉은 군대와 백군 모두 계속되는 전선 형성이 불가능했고 서로 공세를 통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려 했습니다. 서로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는 측면을 노출하고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 때문에 우회와 포위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대전 방식의 진지전도 물론 있었는데 바로 크림 반도에서 일어났습니다. 크림 반도를 장악한 백군의 수장 브랑겔 남작은 크림 반도의 입구인 페레코프 지협을 틀어막고 효과적인 방어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브랑겔을 상대하던 소련 남부 전선군 사령관 프룬제는 브랑겔을 끝장내기 위해 페레코프-촌가르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프룬제는 제1 제파로 4개 보병군을, 제2 제파로 2개 기병군을 투입했습니다. 제1 제파가 브랑겔의 방어선(일명 투르크 방벽)을 돌파하면 기동군인 제2 제파가 돌파구로 투입되어 돌파구를 틀어막으려 오는 브랑겔의 예비대를 차단하고 전과를 확대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프룬제의 작전은 성공하여 브랑겔의 군대는 무너지고 브랑겔은 벨기에로 망명을 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붉은 군대는 전반적으로 공세 실패로 상황이 교착된 진지전으로 변하는 경험을 많이 겪지 않았고 또한 공세와 기동이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전쟁 특성이라는 이념 때문에 더욱 공세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단순한 공세 숭배가 아닌 1차 대전의 슐리펜 계획과 자신들의 비슬라 전역처럼 단 번의 작전만으로 전쟁의 승리를 얻으려는 생각이 아닌 더 단계적이고 신중한 연속적인 작전을 통한 공세를 중요하게 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수단들이 등장했습니다. 현대 화력에 취약했던 기병을 대체할 전차와 장갑차가 등장했고(사실 소련군은 기병도 중요한 기동 자산으로 보고 계속 유지했습니다.) 포격 사거리와 기동성의 한계를 극복할 자주포가 나타났습니다. 기존의 포병 화력의 사거리 또한 더욱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에서 널리 쓰인 항공기 기술은 더욱 크게 발전했습니다. 소련군은 새로운 기술들의 등장이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방자의 우위를 무너트릴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전망에 따라 종심 작전 이론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우선 적 방어 전단을 무너트리고 방어선에 돌파구를 열 제1 제파 충격 집단은 보병, 전차, 공병, 포병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제병협동군이어야 합니다. 적 방어가 취약하다면 공세를 처음부터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전차 및 기계화 전력으로만 구성된 기동 집단을 투입해도 되지만 적 방어 종심이 깊고 대전차 방어가 강할 경우 제1 제파로 기동 집단을 투입한다는건 공세 지속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충격 집단은 제병협동군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근접 지원 전차들이 보병을 방호하고 적 화점을 제압하고 포병은 지속적으로 화력을 투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2 제파인 기동 집단은 충격 집단이 뚫어 놓은 돌파구로 들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진해야 합니다.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적 예비대가 몰려와 돌파구를 닫아버리려 하면 공세로 손상을 입은 제1 제파의 공격이 돈좌되어 버리며 결국 점령한 곳에서 더 나가지 못하거나 아니면 후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2 제파는 최대 속도로 진격해 적 예비대가 투입되지 못하게 차단하고 적 방어 종심 내의 주요 거점들(통신소, 보급창, 사령부, 정비소 등)을 공격해 점령해야 합니다. 실제 1918년에도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 기병 군단으로 구성된 제2 제파 기동 집단을 공세에 투입해 전과를 확대하려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과확대 기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여기에 대해 정확한 이유는 저도 아직 모르지만, 아마 당시 화력에 기병이 취약했기 떄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그 취약성은 전차 및 기계화 부대가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수부대 또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공수부대는 적 종심에 가장 깊이 침투할 수 있는 전력으로 공세 때 사전에 적 방어 종심과 후방에 침투해 적 예비대를 교란하고 주요 거점들을 사전에 점령할 수 있으면 점령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적 예비대의 투입 시기를 지연시키고 적 후방에 거대한 불안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군은 제1 제파와 제2 제파를 지상공격기를 통해 근접 지원하는 동시에 폭격기 집단으로 적 종심 깊숙히 들어가 폭격을 해야 합니다. 이 폭격으로 적 예비대는 이동 중에 손상을 입을 수 있어서 아군 돌파구를 차단하려 진입했을 때 공세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폭격기 전력은 적 종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합니다. 


제1 제파, 공수부대, 공군은 공세 행동시 거의 동시에 활동하여 적의 방어 종심 전체를 타격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적의 방어력을 최대한 취약하게 만들 수 있으며 제2 제파의 전과확대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1차 대전의 딜레마를 해결한 방법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보병과 공병만으로 무인지대를 건너 적 화점을 공격한다.
→전차와 장갑차 같은 장갑 방호 수단들을 투입해 보병과 공병을 보호하는 제병협동 전투를 수행한다.

2. 포병 사거리와 기동력의 한계 때문에 공격 준비 사격 이후 공세 전력에 지속적으로 화력지원을 할 수 없다.
→포병 사거리의 증가와 포병의 자주화로 해결한다.

3. 돌파구로 투입되어 적 예비대의 투입을 차단하고 전과확대를 할 기동 전력이 필요한데 기병은 너무 취약하다.
→전차와 기계화 전력 위주로 이루어진 기동 집단을 투입힌다.

4. 아군 공세 전력은 적 방어 종심을 돌파하며 손실을 입는데 적 예비대는 접근하면서 아무 손실도 입지 않는다.
→공군 전력으로 지속적으로 적 예비대를 공격하고 공수부대를 적 종심 깊숙히 투입해 적 예비대를 교란한다. 


소련의 군사이론가 이세르손이 저서에서 그린 그림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종심 작전이 다른 나라의 전차, 기계화 이론과 달리 숙청 전까지 소련군에서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투하쳅스키를 비롯한 이론가들이 소련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인사들의 직책은 이렇습니다.

투하쳅스키: 국방 인민 위원회 부위원 겸 혁명 군사 위원회 부위원장
예고로프: 총참모장
트리안다필로프: 총참모부 부참모장 (1931년 사망)
세댜킨: 전투 준비국 국장
샤포시니코프: 참모대학 총장
예데만: 군사대학 총장
칼리놉스키: 기계화 총감
할렙스키: 차량화 총감
이세르손: 군사대학 작전술 학부 학부장


실제 대조국 전쟁 2, 3기에서 공수부대의 투입을 제외하고는 거의 이런 상황으로 소련군이 승리했으며 바다와 인접한 작전 전구의 경우 해군보병이 공수부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참고문헌: 이제까지 번역한 것들의 짬뽕. 


덧글

  • 일화 2014/07/28 15:30 # 답글

    깔끔한 정리 잘 보았습니다. ^^
    그나저나 마침 정리글을 쓰신 김에 한가지 여쭙고 싶은데, 소련의 종심작전과 독일의 기동전 교리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제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소련은 최초의 돌파를 가능한 좁게 하고, 기동집단은 최대한 교전을 피하면서(심지어 적 예비대와의 교전도 가급적 피하면서 돌파를 최우선으로 하는 반면, 독일은 가능한 넓게 돌파하여 돌파구가 막히는 것을 예방하고 기동집단이 적 예비대와 교전하여 이를 격파하는 것도 목표로 한다는 점 정도입니다. 단견으로는 기동집단을 백업하는 차량화부대의 다소가 차이의 원인인 듯 한데,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지, 뭔가 다른 (아마도 이론적인) 원인이 있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폭풍부대는 오역이고, 돌격대가 맞다고 알고 있습니다. 돌격포와 같은 단어(슈투름-sturm)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dedic.naver.com/#entry/dk/DK1065527.nhn
  • PKKA 2014/07/28 15:37 #

    세부적인 차이 자체는 제가 독일군을 잘 알지 못하여 답변드리기가 힘듭니다. 단, 제가 책 3-4권 보고 생각한 건 이렇습니다.

    1. 독일의 기동전 교리는 소련군만큼 이론화되거나 정형화되지 않았고 용어와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놔 두었다.
    2. 그리고 임무형 지휘 등으로 이런 애매모호한 것도 무슨 선종불교처럼 이신전심, 직지인심, 견성성불, 불립문자 식으로 문자나 군사이론으로 가지 않고 일선 지휘관과 참모들의 능력과 유연성에 맞겼다.
    3. 에른스트 볼크하임, 오스발트 루츠, 하인츠 구데리안 등 독일군 기계화, 차량화를 주도한 사람들은 투하쳅스키나 트리안다필로프 등과 달리 결국 이론가라기 보다는 행정가, 실천가들이다.
  • 일화 2014/07/28 18:20 #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대공 2014/07/28 15:43 # 답글

    예전 롬멜이 쓴 책을 봤는데 이탈리아 전선쪽도 지형덕인지 저런 기동전술을 쓰더군요.
  • PKKA 2014/07/28 15:43 #

    아니 이건 작전술의 문제입니다.
  • 대공 2014/07/28 16:12 #

    네 그렇죠. 동부전선이야기를 보니까 생각나더라고요;;
  • 엽기당주 2014/07/28 16:26 # 답글

    공군이 공자나 방자나 유용했던게, 적의 예비대 이동에 실질적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제공권을 확보하게 되면 적의 부대/물자 이동에 큰 장애를 주는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인 부분도 있죠. 일단 적기가 아군 공역에서 활보하게 되면 부대이동이 죄다 노출되는데다가 철도 조차장, 교차로, 교량 등등을 보이는 족족 때려부셔놓을테니...

    이렇게 되면 결국 예비대를 투입해도 원하는 시점에 작전지에 도달을 못하는데다가, 물자를 참모부에서 계획한대로 배분을 해서 이동시켜도 현지에 제때 도착을 못하거나 수량이 턱없이 부족해져서 기껏 입안한 작전을 수행하려고 해도 다 꼬여버리는거죠.

    해상봉쇄의 효과를 공군이 커버하는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누린달까나요? RPG 게임으로 치면 적에게 Slow마법을 걸어서 공격/이동/회복을 팍 깎아버리는 효과라고 보면 좋지 않나 싶습니다.

    암튼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PKKA 2014/07/28 16:26 #

    물론 제공권의 영향이 절대적인건 아니지만, 확실히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겁니다.
  • 엽기당주 2014/07/28 16:34 #

    그렇죠.

    제가 군시절때 작계 작성하면서 본건데 개성 위쪽의 주요 도로 교차점이나 철도, 교량, 기타 통신시설 등등을 개전초기에 포병, 항공, 해상화력까지 총동원해서 다 부셔놓는 부분이 있더군요.

    이게 처음에는 왜 적 부대를 타격하지 않고 적이 다니는 길이나 통신시설을 타격하나 싶었는데 이유를 알고보니..

    적의 충격군이 아군의 방어선을 돌파해도 후속부대의 진입을 통한 돌파구 확대 및 교두보 확보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고 적의 전선이동을 느리게 만들어서 아군의 반격역량을 최대화 시키려고 그러는거더군요.

    어차피 진입로가 한정된 서부전선 같은 경우 주요 포인트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면 대규모 부대작전이 어려워진다는게 포인트였습니다.

    암튼 항공우세라는게 중요하긴 한데 너무 의지해도 곤란하긴 하죠. 베트남에서 미군이 당한걸 보면 말입니다. 흐흐.
  • 3인칭관찰자 2014/07/28 16:53 # 답글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택에 종심작전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그 내용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
  • PKKA 2014/07/28 17:00 #

    그런데 아쉬운 건, 관련 번역물을 작년부터 계속 올렸었는데 결국 독자들은 이렇게 정리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ㅠㅠ
  • 3인칭관찰자 2014/07/28 22:13 #

    ㅠㅠ 그만큼 (독일과는 달리) 국내에서 소련 관련 밀리터리나 관련지식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내지는 변명)해봅니다.
  • 천하귀남 2014/07/28 17:40 # 답글

    좋은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
  • 긁적 2014/07/28 18:33 # 답글

    오오오. 정말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잘 보았습니다.
  • PKKA 2014/08/01 11:23 #

    감사합니다 ㅎㅎ
  • 카더라통신 2014/07/28 22:24 # 답글

    국내에서 엘란 비탈이란 용어가 밀덕 사이에서 통용되는 맥락이 좀 요상한데 엘랑 비탈은 원래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이 주장한 걸로 국내에선 '생의 약동'이라고 번역됨요. 일단 엘랑 비탈이란 용어가 퍼지게 된게 배군햏의 영향인 듯 한데 어디서 나왔는지...
  • 카더라통신 2014/07/28 23:21 # 답글

    그리고 공세지상주의의 반동으로 방어제일주의로 나아갔다고 하는 걸 영국군에까지 소급적용하는 건 타당하지 못한 거 같음요. 물론 퍼시 호바트는 반쯤 미친 놈 취급 당하긴 했다마는 그래도 풀러의 이론을 받아들여 순항 전차 장르를 만들고 소련의 DD와 같은 역할을 부여한 걸 감안해야 할 거 같음요.
  • PKKA 2014/07/29 09:18 #

    서방 군대는 몰라서 오류를 범한 셈이 되버렸습니다. ㅠㅠ
  • 2014/07/29 15: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07/29 15: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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