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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 무기체계가 아닌 군사과학과 군사술을 파게 되었는가? 군사학 잡설

저는 사실 주류나 학계 사람도 아닌 주제에 '공식적', '학술적'인 것에 어릴 때부터 좀 집착했었습니다. 중딩때 판타지 소설도 드래곤 라자와 퇴마록 읽고 안읽었는데 이유가 '5권짜리 두꺼운 한국 문학사에서 90년대 부분에 이영도와 이우혁에 대한 언급이 없다'였거든요 -_-;; 이런 경향이 당시 자칭 겨레 밝힌다는 소위 '주류학계에서 소외당하는 재야'가 순 유사역사학이라는걸 안 뒤부터 더 심해졌습니다.

어쨌든 2007년 전까지는 군사 부분에서 다른 밀덕과 별로 다를게 없었습니다. K-1이 어쩌고 레오파르트가 어쩌고 에이브람스가 어쩌고 수호이 개간지 톰캣 개간지, 라팔 꺼져 하며 사진 찾고 스펙 보고 데프콘과 3차대전 보고 하앜하고 등등 그냥 중고딩 밀덕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힘들었고 무엇보다 제가 기술적 부분에서 이해도나 지식이 영 쌓이지 않는게 문제였습니다. 부끄럽게도 머리가 완전히 문과 계통으로 굳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관심사가 확 달라진 때는 2007년에 같이 밀덕질 하던 반 친구가 존 키건의 제2차 세계대전 책을 빌려준 겁니다. 저는 넷상에서 2차대전 논의가 대게 무기체계에 맞춰져 있었길레 자연히 키건의 책에서 좋은 관련 소스를 얻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도 읽어도 그런거 거의 안나왔던 겁니다. 티거의 핸셸 포탑이 어쩌고 포르셰 포탑이 어쩌고, 메서슈미트의 상승률이 어쩌고 스핏파이어 선회율이 어쩌고 하는 무기체계 야그는 전체 분량에서 얼마 차지하지 않았고 대부분 정치경제적 상황, 지휘관의 결정, 부대의 이동, 전투 경과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나중에 군사사 서적 중에서 존 키건의 책이 예외적으로 그나마 무기체계 얘기에 분량을 넣은 책이었다는걸 알았지만 어쨌든 다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던 게 권위있는 책(이라기에는 지금 다시 보면 좀 많이 대중적인) 에서 거의 서술 대상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혹시 전쟁사를 지배하는 것은 무기체계가 아닌 그 위에 있는 무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권위 있는 학자들은 무기체계에 신경 안쓰고 오직 인터넷에서만 논의의 대상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자리잡히게 된 떄는 다음해에 글랜츠의 독소전쟁사를 읽었을 때였습니다. 글랜츠의 책은 키건의 책보다 무기체계 얘기 비중이 책 전체에서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그러다보니 저는 학계의 권위있는 저자들이 군사사에서 무기체계에 신경을 안쓰는 걸 보아 무기체계는 군사사에서 별로 중요한 서술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잡혔습니다.

이런 생각은 대학에 들어간 뒤로 더 확실시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도서관 사회과학 코너에 잔뜩 꽃혀있는 여러 군사학 개론들을 흩어보고 고등학교때 생각한 걸 확실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군사학 개론 및 원론들에는 무기체계 얘기가 아예 안나옵니다. 그리고 시중에 출간된 무기체계 관련 도서들은 다 인터넷 상 자료들을 사진 좀 첨부해서 카피해 오거나 써 놔도 각주, 미주는 고사하고 참고문헌 목록도 없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지 의심되는 책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무기체계가 아닌 더 '근원적이고 학술적인' 군사과학과 군사술에 메달리게 된 겁니다.

그 덕에 주류도 아닌게 주류에 편승하려 하고 비주류를 별로 안보는 사람이 되어버렸죠. ㅠ

이러다 보니 가장 큰 문제는, 무기체계 논의를 이전에 '쓰잘데기없는 것' 수준으로 비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관련 글은 다행이 안싸질렀지만요. 

덧글

  • 골든 리트리버 2013/08/28 21:31 # 답글

    전쟁 과정에서 전략/전술의 결정에서야 무기체계가 직접 고려대상이 될 일은 없죠. 다만 개개의 전투로 누적되는 피해와 승패의 결과가 전력에 미치는 효과, 그로 인한 향후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서 무기체계의 특성이 작용하는 것이죠.

    ..는 밀덕이라면 대부분 아는 내용을 혼잣말하는 느낌이군요;
  • PKKA 2013/08/28 21:32 #

    전략/전술이 아니라 전략/작전술/전술 입니다. 이걸 밝혀낸 소비에트 군사과학 만세!

    는 농담이고 ㅋ 어쨌든 걸프전 이후 작전술적 수준까지 무기체계의 역할이 늘어난건 사실입니다.
  • 위장효과 2013/08/28 21:32 # 답글

    그런데 사실 주류문학계가 판타지를 그렇게 폄하하는 건...판타지문학에 정통성이라든가 작품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편견때문이죠. 퇴마록이야 좀 강할 정도로 환독에 물든 게 문제지만 이영도씨 작품만 해도 작품성이란 문제에서는 꽤나 괜찮은 편인데 주류는 그런 걸 너무 무시하는지라.
  • PKKA 2013/08/28 21:33 #

    어쨌든 어떠한 한국문학사 서적에도 90년대 통신문학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는데 저도 이전에는 주류가 문제가 있다 생각했지만 그럴만할 이유가 있지 않을 까 합니다. 아니면 제가 주류도 아닌데 주류에 편승하는 거던가요 ㅠㅠ
  • 위장효과 2013/08/28 21:42 #

    아뇨. "순수"란 단어에 너무도 집착하는 게 한국 예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지요.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어떤 일이 있었냐면 예전에 박인수 교수께서 가수 이동원씨-이 분도 대중가수인데 뭐랄까 좀 순수쪽으로 기웃거리면서 "내가 진정한 예술가야!"하는 부심이 좀 강한 편이지만-하고 같이 정지용 시인의 작품을 가지고 듀엣 앨범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서울대 음대 교수셨는데 당시 음대에서 아주 난리가 났었지요 "딴따라하고 듀엣 앨범 내냐!!!"하면서요. 그런데 바로 그보다 몇 년 전에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가수 존 덴버가 같이 듀엣 앨범-"Perhaps Love"-낸 적이 있는데 이게 엄청나게 히트쳤거든요. 플라시도 도밍고나 루치아노 파바로티같은 세계적 테너들만 봐도 오페라, 성악곡집 못지않게 현대 대중 음악가들과 콜라보 음반도 많이 냈습니다. (뭐 파바로티와 친구들같은 콘서트는 체력적으로 많이 쇠퇴해서 더이상 오페라공연등을 할 수 없게 된 파바로티 옹의 자구책이란 비판도 있었습니다만) 그런 걸 한국 예술계는 별로 인정을 안 합니다. 당시 국립오페라단에서 짤리네 서울대에서 짤리네 마네 하고 꽤나 시끌벅적했었습니다.

    "순수"에 너무 집착하는 게 문제죠. 요즘 판타지 소설 보면 그야말로 이고깽 양판소물들이 범람해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괜찮은 작품들이 꽤나 나오거든요.
  • PKKA 2013/08/28 21:47 #

    제가 입맛을 주류에 맞춰서 그렇게 보는 것 같습니다. ㅠ
  • 위장효과 2013/08/28 21:52 #

    뭐 유사역사학이나 요즘 이글루스에서 분탕질치시는 어느 일빠라든가...이런 부류보다야 백배 천배 낫지 않겠습니까^^.
  • 에이브군 2013/08/28 22:53 # 답글

    그런면에서 소부대 전술이나 대대규모 넘어가면 볼거 없는 서방쪽이 무기체계랑 전술 둘다 파는데 도움이 되는듯ㅇㅇ

    우월함 이 저열할 소삐에뜨넘들!!
  • PKKA 2013/08/29 11:45 #

    저 무슨 말씀인지 -0-
  • 메데 2013/08/28 22:58 # 답글

    그러므로 우리는 티-거나 에이브람스를 멀리하고 야사를보는것이 건강에 이롭습니다.
  • PKKA 2013/08/29 11:45 #

    껄껄
  • 쿠루니르 2013/08/29 00:49 # 답글

    저는 소규모(중대/대대) 전술을 보는게 더욱 재밌더군요.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몰라도 [....]
  • PKKA 2013/08/29 11:45 #

    머리 나쁘시면 그런 디테일한걸 어떻게 보겠습니까. 저는 그게 머리아파요 ㅠ
  • 윤민혁 2013/08/29 01:32 # 답글

    새삼 제 18살 때가 부끄러워지는군요. (...)
  • PKKA 2013/08/29 11:45 #

    생각해 보니 제가 공학쪽 머리가 부재해서 이렇게 된지도 몰라요 ㅠ
  • 윤민혁 2013/08/29 14:18 #

    공학적 머리만 있으면 일본의 가공전기 작가같이 된다는 게 문제인지라 그게 백만배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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