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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현 박사의 학위논문 <소련의 아프간 전쟁>에 대해 책 잡설

제가 이분의 학위논문에 뭐라 딴지를 걸 계제는 못됩니다. 이 논문은 그 유명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지도와 추천으로 출간되었고 출간 당시 한일 양쪽에서 동시 출간된 논문으로 상당한 저작입니다. 이웅현 박사님은 실제 당시 공개된 상당한 양의 1, 2차 사료들을 수집했고 그 덕에 빵빵한 참고문헌 목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기본이려나요?) 그 때문에 논문 자체에 대해서는 좋은 의미로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프간 당시 소련 군부 동향에 대한 서술입니다. 이웅현 박사님이 이때 참고한 문헌 중 하나가 『Inside the Soviet Army』인데 이 책은 망명한 소련 총참모부 정보총국 대위 출신인 빅토르 수보로프(본명 블라디미르 레준)의 저작입니다. (수정하기 전에는 '소장'인줄 알았는데 제 오류였습니다.) 빅토르 수보로프는 미국으로 망명한 후 미군 내에서 권위 있는 소련군 관련 출처가 되었습니다. 수보로프의 증언과 저작들은 소련군 연구의 주요 출처가 되었고 그의 책을 교차검증할 방법은 소련이 국방성 문서고를 개방하지 않는 한 많이 없었습니다. 

 

수보로프는 이리하여 많은 부분에서 서방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대게 그는 서방의 소비에트 군사술 연구 방향과 당시 나온 결론들에 부합하는 정보와 증언을 제공했고 또 당시 만연한 소련군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는 서술을 계속 했습니다. 즉, 공산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비효율성, 권력다툼과 암투가 비일비재한 국방성과 총참모부, 능력이 아닌 인맥과 줄대기로만 가능한 고위직 승진 등등의 이미 있었던 서방의 고정관념에 수보로프는 『Inside the Soviet Army를 통해 이걸 고정관념이 아닌 '진실'로 뒷받침할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에도 『붉은 군대 이모저모』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현재 절판 상태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자 '빅톨 수바로프'의 압박 -_-)

 

그러나 소련이 문서고를 개방하자 더 이상 좋은 출처가 되기 힘들어진 수보로프는 음모론 장사를 시작합니다. 일명 '소련의 선제공격 준비설'로 사실 스탈린은 바르바로사 작전 전에 독일에 대한 선제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걸 숨기고 있었다 라는 내용의 책인 『Icebreaker』를 출간합니다. 이 책은 서방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독일과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인기를 끌음에 따라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존 에릭슨,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등의 유명한 학자들이 수보로프를 상대로 한 논쟁에 가담했고 급기야 데이비드 글랜츠가 『Stumbling Colossus』를 출간해 수보로프의 주장을 완전히 논파함에 따라 더 이상 학계에서는 수보로프가 인용되지 않고 믿지 못할 출처로 간주됩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소련판 회오리 33입니다. 아니 회오리 33이 한국판 수보로프라 해야 하나요?

 

아쉽게도 이웅현 박사님은 수보로프가 아직 믿을 만할 출처라고 생각했는지 서술에 따른 소련군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논문 내에서 권력 암투, 능력이 아닌 인맥에 따른 출세 등등의 소련군을 음습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서술에 수보로프의 그림자가 적지 않게 드리워져 있고 실제 이 부분에서 수보로프를 인용합니다. 물론 수보로프의 책은 논문의 많은 참고문헌 중 하나에 불과하고 또 논문 서술 방향이 그런 부분이니 어쩔수 없지만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 이게 원래 일본에서 쓴 논문이다 보니 소련군 관련 번역어는 죄다 일본식입니다. 자동화 저격 사단의 압박 -_-


덧글

  • 네비아찌 2013/08/09 14:58 # 답글

    소련군은 전시에 사단이 출정하면서 부사단장부터 부소대장까지 모든 하위제대 부지휘관이 남아서 소집된 예비군 사단의 각 제대 지휘관으로 착임한다는 주장도 수보로프의 뻘소리였죠?
  • PKKA 2013/08/09 15:02 #

    사실 제가 수보로프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요. ㅠㅠ 그저 《붉은 군대 이모저모》의 목차만 봐도 서술 목적이 드러나서요.
  • 위장효과 2013/08/09 17:51 #

    그거 진지하게 인용한 책이 뭐였더라...저도 그거 읽고 그래???하고 혹했었는데 그게 다 수보로프의 뻘소리였다니...OTL
  • PKKA 2013/08/09 20:36 #

    어쨌뜬 확실히 웃기는 소리인게 군사사 저널 보면 부지휘관들이 지휘관 대리로 전방에 나가거나 아니면 중요한 지역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임시편제 부대를 지휘하는 경우가 보입니다.
  • Graphite 2013/08/09 15:29 # 답글

    Inside the soviet army는 국방부에서 "소련군"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었지요. 중고서점에서 구한적이 있는데 가격이 없는걸 보니 참고용으로 내부에서만 돌려봤던 모양입니다.
  • PKKA 2013/08/09 15:35 # 답글

  • Graphite 2013/08/09 15:42 #

    국방부판은 86년 발행입니다. 이미 출판서적이 있는데도 새 역자가 다시 번역한걸 보면 국방부에서도 못써먹겠다고 생각한 것 같군요;
  • PKKA 2013/08/09 15:59 #

    병학사에서 한때 유명 군사서적을 많이 출간했는데 다 번역이 엉망이라니 참 안습하죠 ㅠ
  • 腦香怪年 2013/08/10 02:10 #

    저 판에서 소련 군대에서 위장술을 중시한다는 걸 이야기 하면서 오가르코프를 언급하는 걸 잼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가르코프의 출세가 바로 이 분야에서 비롯되었고 위장 기만 총국장(역서에는 보다 더 직역에 가까운 명칭이긴 했지만)의 활동에 대해서 꽤 상세히 -물론 냉소적인 필치로- 적었죠. 아마 허위와 부패가 가득찬 소련군이라는 기본 테마를 묘사하는 데 가장 적절한 소재가 이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관심사가 관심사인 지라 Inside Soviet Military Intelligence나 spetsnaz 같은 책으로 저 인물을 접했는 데 80년대 초반 스페츠나츠에 대한 신화를 서방 측에 퍼뜨리는 데 일조헀던 인물이기도 하죠. 또 그 걸 일본에서 그대로 받아쓰고 다시 한국에서 이 걸 무비판적으로 참고 인용해서 이런 흐름이 한국에서 한동안 남아 있기도 했었으니
    그런데 빅토르 수브로프/ 블라디미르 레준이 장성급이었습니까? 제가 기억하기로는 GRU 소속의 대위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 PKKA 2013/08/10 07:53 #

    윤민혁님 말씀대로 제가 잘못 안 것이었습니다. 정정합니다.
  • 윤민혁 2013/08/10 02:26 # 답글

    정정 사항. 블라디미르 보그다노비치 레준은 대위 때 망명했고, 장성급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스페츠나즈를 거친 GRU 요원이라서 유명해졌지요. 참고로 그 소련군 책은 엉뚱하게도 러시아 쪽에서 영어 원문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http://militera.lib.ru/research/suvorov12/index.html

    이 사이트에 가면 레준 책이 거의 다 영어 원문으로 공개돼 있지요. (쓴웃음)
  • PKKA 2013/08/10 07:51 #

    헐 소장이 아니라 대위였군요. 정정 감사합니다.

    저 러시아 사이트는 웬만한 군사 서적은 다 공개하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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