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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글) 전후 독일 군사학은 어째서 오류에 침묵했는가? 군사학 잡설

* 본 글은 작년에 사료나 서적의 도움 없이 단순 추측으로 때려맞춰서 쓴 글이라 신빙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여기에 대해 아시는 분께서 관련 자료를 포스팅하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전후 서방 군사학자들은 2차 대전 초기에 독일이 거둔 광속 승리의 원인이 '전격전'이라는 '교리화되고 체계화된 기동전 전술 교리'나 '전격전에 맞춰서 단기전을 지향한 히틀러의 전략' 이라는 잘못되고도 한참 잘못된 결론을 내렸습니다. 리델 하트는 만슈타인, 구데리안 등의 서신 교환 및 인터뷰와 간접 접근 전략에 짜맞춘 해석으로 이런 오류를 부채질했으며 베트남전 이후 미군이 소련의 기동전에 대응하기 위한 대응 전략으로 독일의 기동전을 배우려 들다가 오류를 한층 더 재생산해 버리고 맙니다. 여담이지만 그 오류 재생산의 대표주자가 영국의 찰스 메신저인데 2010년에 국내에 출간된 롬멜 전기의 저자입니다. 그 책 평점 깎아야 하겠더군요.

더 복잡하게 쓰기는 힘드니 자세한 사항은 우리의 성전(?)인 칼 하인츠 프리저의 《전격전의 전설》을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사실 이런 오류는 군사학이 서방보다 훨씬 발달한 소련에서도 마찬가지로 생산되었습니다. 데이비드 글랜츠의 명저 <Soviet Operational art: Pursuit to Deep Battle>에 짤막하게 나온 건데, 소련 군사학에서는 서방의 오류에서 한술 더 떠서 체계화된 전격전은 사실 소련의 종심 작전에서 배워간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까지 했습니다. -_-

근데 90년대 중반 이후에서 시정되는(물론 민간에서는 계속 재생산되고 있지만) 오류를, 50년 넘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독일 군사학계는 시정 안하고 뭐하고 있었냐는 의문이 드는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소련 군사과학에 완전히 종속된 동독 군사학계야 그렇다 치더라도 서독 군사학계는 그 동안 잠만 자고 있었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 사실 문헌이나 서적을 본 바는 없지만 당시 상황을 추정해서 해설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후 서독 연방군의 창설 과정에서 창군의 주역들은 극심한 나치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일본과 더불어 최악의 전범국가인 독일에서 다시 군대가 탄생한다는 것은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만슈타인이나 되니츠 같은 국방군의 고위 인사들이 창설에 관여하고 아돌프 호이징어 같은 한때나마 히틀러 밑에서 육참총장 했던 인사였지만 어쨌던 군 경험이 많은 인사들이 연방군의 고위직에 올랐습니다. 이는 자연히 연방군을 나치 국방군의 후신으로 볼 수 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연방군의 입지 및 정통성은 바닥에 떨어질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연방군의 조치는 철저한 탈 나치화, 탈 국방군 화였습니다. 심지어 급진적인 장교들은 국방군 시절을 따지고 올라가면 바이마르 공화국군과 1차 세계대전때의 독일 제국군이 있으니 이것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더 급진적인 장교들은 독일 제국군의 원류는 보불전쟁 때의 프로이센군이니 프로이센군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보다 더 급진적인 장교들은 아예 프리드리히 2세 시절의 프로이센군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독일 연방군은 부모 없이 독자적으로 태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독일 연방군은 철저한 과거 부정을 하며 임무형 지휘체계같은 원낙 오랫도록 몸에 배인 특성은 없애지 못했지만,  작전참모를 극히 중시하는 참모조직, 장군참모 육성 제도 등 구 국방군을 연상시키는 특성들을 거의 없애버렸으며 철저한 미군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철저한 탈 나치화, 탈 국방군화를 추구하다 보니 독일군이나 독일 학자의 눈으로 전쟁사를 연구하는 건 껄끄러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논조가 '친 나치적, 친 국방군적'으로 보일 만하기만 하면 곧바로 나치가 되버리니까요. 그러다 보니 연방군 학자나 민간 학자가 독일 국방군의 전투사와 군사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반쯤은 금기 사항이 되어 버렸을 것 같습니다. 독일군의 학자가 서방의 연구서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프랑스 전역을 연구해야 하니 연방 문서고 좀 뒤지자 하면 '너님 나치임?'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던 겁니다. 독일이 제3차 하리코프 공방전 이후 소련을 이길 수 있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던 파울 칼 슈미트도 폴 카렐이란 가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을 정도입니다. (물론 냉전이 극도로 치닫던 시대에 나온 책이라 출간시 호평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 학계는 그 많은 1차 사료들을 놔두고 서방의 오류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예 소련 학계에 종속된 동독 군사학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더군다나 승리의 주역이었던 만슈타인과 구데리안은 자신들을 극도로 찬양하고 옹호하는 리델 하트를 통해 살 길을 찾기 위해 리델 하트의 오류에 일정 부분 맞장구를 쳐 주며 오류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회고록에서는 전격전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는 언급은 안했지만요. 미국에서 국방군 출신 인물들 데리고 전사 연구부에서 일하던 프란츠 할더는 "전격전은 원래부터 없던 것이다."라고 발언했지만 당시 할더의 발언을 조명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는 제 추축이지만, 국방군을 연구하면 나치로 찍힌다는 분위기로 인해 한동안 독일군을 독일인이 제대로 바라보는 건 금기가 되었으며 계속된 뼈를 깎는 뿌리 부정으로 어느 정도 대중의 신뢰를 확보한 90년대 이후에야 전격전의 전설 같은 오류를 타파하는 책이 나온 것 같습니다.

결국 독일 내에서 이런 오류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독 연방군이 계속 살려면 철저한 과거 부정이 필요했고 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 오류를 재생산해 온 동서방 군사학에도 큰 책임이 있을 겁니다. 


덧글

  • 만슈타인 2013/05/06 14:12 # 답글

    독일의 성과가 솔직히 침략전쟁의 성과가 크기 때문에 (특히 2차대전의 성과) 그에 대해서 세세하게 연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일단 타국 처럼 명령서가 길게 잘 구성된 것도 아니고 순간순간 지휘관들의 판단력과 그들의 습관화 된 행동에서 나온 Art적 측면이 많고 무엇보다도 1945년에 영국 공군이 독일군 기록소를 날려버린 것도 한몫하겠지요
  • PKKA 2013/05/06 19:32 #

    그래도 결론적으로 보고 싶은 데로 본 격이 되니...
  • 위장효과 2013/05/06 15:58 # 답글

    그런데 다른 장성들과 달리 칼 되니츠는 마지막 대통령-퓨러가 아니라. 퓨러는 대통령+수상인데 수상은 괴벨스 선전장관이 계승했으니-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정작 연방군창설에는 참여하지 못했을 겁니다. 나중 장례식때도 다른 독일군 출신 연방군 장성들과 달리 현역 연방군 간부들이 제복입고 참석하는 게 불허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자료가 어디 있었는데...-개인적인 자격으로 참석은 가능했지만요.
  • PKKA 2013/05/06 19:31 #

    흠 그랬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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