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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한 적절한 반응 기타 역사

조선시대 교양서에서 뿜어지는 환독의 냄새


종종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식민주의'의 본색에 대한 것이다. 식민주의는 역사학에서 식민사관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식민사관을 가볍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식민사관은 극복되었다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은 듯 하다. 내가 보기에는 결코 '아니다.' 여전히 그 담론에 포섭되어 있다. 식민지의 지식인들을 포함해 독립성을 상실한 인민들에게 '너희들의 유전인자에는 원래 사대주의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세뇌는 마치 상처를 다시 후비는 일이었다. (중략) '사대주의에 찌들었다'고 세뇌 당한 조선시대를 피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대로, 고대로 올라갔다. 고대의 영광을 찾아서. 식민지 시대에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은 이해한다. 문제는 요즘도 그런 콤플렉스가 계속된다는 점이다. '아! 고구려', '황제국 고려' 등, '왕년에는 우리도......' 와 같은 비슷한 심리이다. 

이런 사대주의를 극복한다고 내놓은 대안이 '사대주의자도 있었지만 주체적인 민족주의자도 있었다'는 반론 같지 않은 반론이었다. 게다가 이 '사대-주체' 구도로 정치세력도 사상도 줄줄이 줄을 세운다. 전혀적인 '콩쥐-팥쥐' 구도이다. '사대=나쁜 나라' 대 '주체=좋은 나라'. 웃을 일이 아니다. 역사 연구서뿐 아니라 대중서 역시 이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대안으로는 사대주의가 극복되지 않는다. 사대는 사실이므로 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사대? 그게 왜 문제지?' 라고 되물어보아야 한다. 요즘 하는 말로 '쿨하게' 담론을 해소해야 한다. <오항녕, 조선의 힘, pp. 7~8>


조선문명의 성격은 분명히 평화적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하면 "당하고만 사는 게 무슨 평화주의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지만, '부국강병'에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역사상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과연 어느 정도가 되어야 '부'와 '강'일수가 있단 말인가? 이 질문은 돈이 얼마나 있어야 만족하는가 하는 질문과 같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부'와 '강'으로 사회의 평안과 행복의 척도를 삼으려고 했다면, 그건 줄을 잘못 서도 한참 잘못 선 셈이다. 그것은 단지 '어떤 바람직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조건, 그것도 '조절되어야 할 조건'의 하나일 뿐이다. <위의 책, p. 219>




제가 이래서 오항녕 교수님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니까요. ㅋㅋ



덧글

  • shaind 2013/05/04 19:24 # 답글

    부국강병이란 거울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 같은 거죠.
  • PKKA 2013/05/04 19:32 #

    적절한 비유신듯 합니다.
  • rumic71 2013/05/05 09:39 # 답글

    하지만 열강이라고 행세한 나라들은 꽤 있었지요.
  • 만슈타인 2013/05/05 19:37 # 답글

    부국강병'에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역사상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과연 어느 정도가 되어야 '부'와 '강'일수가 있단 말인가? 참 적절한 지적입니다.
  • 카더라통신 2013/05/06 02:26 # 답글

    식민사관과 관련해서 그것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남북한 공히 등장했던 내재적 발전론(물론 본류는 일제시대 맑스주의 경제학 연구까지 간다지만)이 학계에서 털리는 신세가 된 걸 생각해보면 세월무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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