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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역개루 카페에서 오항녕 교수님과의 대화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기타 역사



질문을 하려면 반드시 역개루 카페에 가입하여 공지글( https://cafe.naver.com/historyarchive/11065

 ) 에 질문을 댓글로 쓰셔야 합니다.


이벤트는 역사와 논문, 저서, 번역서에 대한 여러 질문사항들을 받으며 개인사적으로 궁금한 사항: 예) 어떻게 역사학자가 되려는 마음을 먹으셨나요? 와 같은 것을 포함합니다. 질문사항을 공지글에 덧글로 달아주시면 취합하여 오항녕 교수님에게 메일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질문자의 닉네임도 전달됩니다. 그리고 장난이나 무례한 질문은 금지하며 전달하지 않습니다. 질문은 구체적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사항을 취합하는 기간은 7월 8일부터 8월 12일까지입니다. 8월 12일까지 공지에 덧글로 질문사항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오항녕 교수님은 8월 중순 이후 답변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연구범위 밖의 소재를 질문하면 만족할 만할 답변을 듣지 못할 수 있음으로 이 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연구범위등에 있어서는 아래와 같이 교수님의 저서와 논문 목록이 있음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서


1960년대 이후 한국 정치외교에 대한 질문은 카페규정 위반이니 금지합니다.

"통일시대 역사인식을 찾아서", 김용옥 편저『삼국통일과 한국통일 하권』(통나무, 1994)

"격조 있는 읽기, 쓰기, 보기", 한국역사연구회 편저『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권 (청년사, 1994, 2005)

"조선시대 사학사 : 전체의 검토, 과제의 제기", 강만길 편저, 『조선후기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창작과비평, 2000)

"經史 : 역사를 읽는다; 경험과 성찰", 한국사상사연구회 편저, 『조선유학의 개념들』(예문서원, 2002)

(번역서) 국제기록관리재단, 『기록보관소의 기록관리』(진리탐구, 2002)

(번역서) 국제기록관리재단, 『자료관의 기록관리』(진리탐구, 2002)

(역주), 『선조수정실록청의궤』(일지사, 2004)

『기록보관소의 기록관리』(진리탐구, 『기록학의 평가론』(진리탐구, 2005)

"기록학의 관점에서 본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 김흥규 외, 『조선시대 전자문화지도와 문화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6)

『조선초기 치평요람의 편찬과 전거』(아세아문화사, 2007)

『조선초기 성리학과 역사학: 기억의 복원, 좌표의 성찰』(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7)

"지도 천주교 분규 사건", 김진소 외, 『한국사회와 천주교』(흐름출판사, 2007)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일지사, 2009)

『조선의 힘: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역사비평사, 2010)

『기록한다는 것: 오항녕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너머학교, 2010)-청소년도서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붃, 2012)

(역서) 유지기 ,『사통: 오천 년 중국사에서 가장 탁월한 역사서』(역사비평사, 2012)

"조광조: 시대를 앞서 간 개혁가", 『역사에서 찾는 지도자의 자격: 지금 우리 시대가 원하는 리더를 만나다』(꿈결, 2012)

(공역) 『존재집』(흐름출판사, 2012)

"동사강목東史綱目』과 『통감강목通鑒綱目』의 대비 연구", 임형택 외,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조선 문치주의의 트로이카: 유교 국가의 제도", 한형조 외, 『500년 공동체를 움직인 유교의 힘』(글항아리, 2013)

(역서) 허부문, 『추안급국안』(흐름출판사, 2014)

(역서) 이관명, 『병산집』(흐름출판사, 2015)

『유성룡인가 정철인가: 기축옥사의 기억과 당쟁론』(너머북스 2015)

『조선 역사학의 저력: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한국고전번역원, 2015)

(역서) 장순휘, 『역사문헌교독법』(한국고전번역원, 2015)

(역서) 민정중, 『노봉집』(흐름출판사, 2015)

(역서) 이이, 『율곡의 경연일기: 난세에 읽는 정치학』(너버북스, 2016)

『호모 히스토리쿠스: 지금 여기를 위한 역사 공부』(2016, 개마고원)

(역서) 이건명, 『문곡집』(흐름출판사, 2017)

『간신: 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망쳤는가』(삼인, 2017)

(공역), 진덕수, 『대학연의: 리더십을 말하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논문

「17세기 전반 서인산림의 사상 : 김장생 · 김상현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제8집 (1992)

「一齋 李恒의 生涯와 學問 - 朝鮮性理學 成立期의 한 지식인의 삶과 생각 -」, 『남명학연구』제3집 (1993)

「朝鮮 孝宗代 政局의 變動과 그 性格」, 『태동고전연구』제9집 (1993)

「史官制度 成立史의 제문제」, 『태동고전연구』제14집 (1997)

「조선초기 경연의 '자치통감강목' 강의」, 『한국사상사학』 제9집 (1997)

「여말선초 사관(史官) 자천제(自薦制)의 성립과 운영」, 『역사와 현실』제30집 (1998)

「성리학적 역사관의 성립 : 초월에서 현실로」, 『조선시대사학보』제9집 (1999)

「朝鮮初期 《高麗史》 改修에 관한 史學史的 검토」, 『태동고전연구』제16집 (1999)

「磻溪 柳馨遠의 생애와 사상」, 『정신문화연구』제22집 1호 (1999)

「朝鮮初期 文翰官署의 整備와 史官制度」,『한국사학보』제7집 (1999)

「朝鮮初期 實錄編纂體裁의 변화에 관한 史學史的 考察」, 『한국사학사학보』제1집 (2000)

「실록 전통의 재창조를 위하여」,『디지틑 도서관』제23집, 제24집 (2001)

「실록(實錄):등록(謄錄)의 위계(位階)」, 『기록학연구』제3집 (2001)

「朝鮮時代 時政記 編纂의 規定과 實際」, 『한국사학사학보』제8집 (2003)

「성리학 역사서의 형성과 구조」, 『한국실학연구』제6집 (2003)

「실록의 의례성에 대한 연구」, 『한국시대사학보』제26집 (2003)

「朝鮮中期 學術振興과 鶴山書院」, 『인천학연구』제2집 1호 (2003)

「《宣祖實錄》 修正攷」, 『한국사연구』제123집 (2003)

「그런데 왜 실록을 편찬하였을까?」, 『내일을여는역사』제14집 (2003)

「아키비스트의 역할과 윤리」, 『기록학연구』제7집 (2003)

「유가의 이단, 이단인 유가」, 『오늘의 동양사상』 제9집 (2003)

「조선후기 국사체계(국사체계)의 변동에 관한 시론 : 실록(實錄)에서 일성록(日省錄)으로」, 『역사와 현실』제52집 (2004)

「조선시대의 시간: 구획과 층위」, 『민족문화연구』제40집 (2004)

「한국기록관리와 ‘거버넌스'에 대한 역사적 접근」, 『기록학연구』제11집 (2005)

「ASEAN+3 기록유산의 디지털화 현황과 전망」, 『인문콘텐츠』제5호 (2005)

「조선전기 춘추관 겸직제도의 성격」, 『사총』제60집 (2005)

「조선후기《承政院日記》改修 연구」, 『태동고전연구』제13집 (2006)

「조선초기 治平要覽 편찬배경과 성격」, 『한국사학사학보』제13집 (2006)

「조선 전기 史禍의 양상과 그 성격 : 제도와 현실의 상호 규정에 대한 소고 」, 『한국사학보』제24집 (2006)

「조선전기 경사체용(經史體用)의 전통에서 본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역사학」, 『역사문화논총』제2호 (2006)

「正祖초반 『英祖實錄』편찬에 대한 연구」, 『민족문화』제29호 (2006)

「역사교육의 또 다른 지평, ‘아카이브'」, 『역사교육』제101집 (2007)

「실록, 어떤 문화의 응축」, 『디지틀 도서관』제51집 (2008)

「기억의 시냅스: 효종(孝宗)과 송시열(宋時烈), 그리고 정조(正祖)」, 『동서철학연구』제48집 (2008)

「조선전기 기록관리 체계의 이해」, 『기록학연구』제17집 (2008)

「尤菴 宋時烈 문집의 편찬과 간행」, 『한국사학보』제33집 (2008)

「春秋大義와 禮訟의 기억: 宋時烈과 魏伯珪」,『태동고전연구』제27집 (2011)

「동아시아 봉건 담론의 연속과 단절」, 『사총』제72호 (2011)

「『史通』의 구조와 역사비평」, 『태동고전연구』제29집 (2012)

「存齋 魏伯珪의 格物說」, 『태동고전연구』제28집 (2012)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정치활동과 경세론(經世論)」, 『한국사학보』제46집 (2012)

「『경종실록』의 편찬과 수정」, 『민족문화』제42호 (2013)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 순암안정복(順菴安鼎福)의 단대사편년체(斷代史編年體), 『열조통기(列朝通紀)』」, 『한국실학연구』제25호 (2013)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독사론(讀史論) : 「상론(尙論)」과 「대명기(大明紀)」를 중심으로」, 『전북사학』제42집 (2013)

「내상(內傷)과 외상(外傷)을 넘어 -인조시대 대내외 정책」, 『한국불교사연구』제4집 (2014)

「조선시대 추안(推案)에서 만난 주체의 문제」, 『(中國語文論譯叢刊』제34집 (2014)

「문치주의와 대칭적 경세론에서 본 《경연일기(經筵日記)》」, 『율곡사상연구』제28집 (2014)

「『현종실록』의 편찬과 개수(改修) : 시정기찬수범례(時政記纂修凡例)를 통한 비교」, 『한국사학사학보』제29집

「기축옥사의 비극적 사건과 기억들」, 『한국인물사연구』제23집 (2015)

「늦게 핀 매화는 한가로운데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의 사상사적 좌표에 대한 시론(試論)」, 『한국사상사학』제52집 (2016)

「文谷 金壽恒과 己巳士禍」, 『한국인물사연구』제25집 (2016)

「역사 대중화와 역사학- 역사의 향유와 모독사이 -」, 『역사와 현실』 제100호 (2016)

「역사학과 기록학: 학문의 인연, 학제의 괴리」,『기록학연구』제54호 (2017)

「광해군대 경제정책에 대한 교과서 서술-대동법과 양전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제83호 (2017)

「왜 백성의 고통에 눈을 감는가 : 광해군 시대를 둘러싼 사실과 프레임 」, 『역사비평』통권 제121호 (2017)


마이클 돕스의 『1945』 1장 일부 발췌 기타 역사

* 책의 홍보를 위하여 1장의 일부만 발췌해 올립니다.


1장 


루스벨트


몰타섬에 있는 작은 비행장 주기장에서 반짝이는 흰 별이 그려졌고 대형 엔진 네 개가 달린 항공기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의 마지막 임무에 나설 준비를 하며 서있었다. 신형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는 휠체어에 앉은 대통령을 기내로 옮길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각종 최신 편의시설을 갖췄다. 루스벨트는 휠체어를 좁은 엘리에비어로 미는 경호원에게 불평을 했다.


“이런 건 내가 승인한 적 없는데. 정말 쓸데없어.”


당황한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보안상 필요하다고 했다. 엘리비이터가 없으면 긴 경사로가 잇어야 했고, 그러면 적 스파이가 소아마비에 시달리는 미국 대통령의 출발과 도착을 미리 알게 될 터였다. 그럼에도 쓸데없는 호들갑과 예산 낭비를 싫어하던 루스벨트는 엘리베이터가 탐탁치 않았다. 


출발 일정은 공연을 연출하듯이 세심하게 기획됐다. 군용기 30대가 작은 관제탑 옆에 도열해 이륙 허가를 기다렸다. 10분 간격으로 맨 앞에 있는 항공기가 창문을 가리고 외등을 모두 끈 채 컴컴한 활주로 끝으로 이동했다.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중해 하늘로 이륙하면 다음 비행기가 그 자리로 이동해 이륙 준비를 했다. 이날 밤은 엔진을 예열하는 미군 스카이마스터, 영국군 요크 수송기, 주변 상공을 맴도는 전투기의 굉음으로 시끄러웠다.


대통령 전용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프로젝트 51’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전용기 제작은 극비였다. 극소수의 관계자들은 전용기를 ‘신성한 소’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2년 전인 1943년 1월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비행기로 여행한 대통령이 되었다. 처칠과 회담하기 위해 팬아메리칸 항공사의 수상비행기를 타고 카사블랑카로 향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 중에 대통령이 민항기로 이동하는 것은 확실히 불편했다. 특히 하반신이 마비된 대통령에게는 더 그랬다. 그렇게 “하늘의 백악관”이 첫 비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1945년 2월 2일 밤 11시 15분 루스벨트는 ‘신성한 소’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새벽 3시 30분에 이륙할 예정이었다. 대통령 주치의는 루스벨트가 기내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은 날개 바로 뒤에 있는 특등실로 옮겨졌다. 흑인 집사 아서 프리티먼은 대통령이 옷을 갈아입고 대통령 문장이 그려진 3인용 소파에 편히 눕게 도왔다. 특등실에는 흔들의자, 회담용 테이블, 옷장 및 개인용 화장실, 일반 항공기 창문에 비해 폭이 두 배에 파란색 커튼이 달린 파노라마식 방탄유리창 같은 편의시설이 있었다. 창가에 설치된 인터폰으로 조종석을 비롯해 기내의 다른 곳과 연락할 수 있고, 안쪽 벽에는 비행 중 브리핑에 쓸 수 있는 롤스크린 지도가 여러 장 구비되었다. 소파 바로 위 벽면에 그려진 파도를 뚫고 나가는 19세기 범선은 루스벨트의 바다 사랑을 환기시켰다.


만성 피로에 시달린 대통령은 지난 12일 동안 미 해군 순양함에 타고 대서양을 건너면서 매일같이 각종 카드 게임을 하고 저녁에는 영화를 관람했다. 하룻밤에 12시간 자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쉬어도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지난 선거 유세 당시 뉴욕에서 오픈카를 타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유세를 하느라 남은 에너지 대부분을 소진했다. 4선 임기를 버틸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선거 유세는 루스벨트가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그대로, 강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졌으며 낙관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집중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을 숨긴 것이다. 루스벨트는 수개월 사이에 체중이 20킬로그램 가까이 줄어 뼈만 남은 듯 보였다. 어떤 경우에는 혈압이 150을 넘어 260까지 치솟을 만큼 불안정했다.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루스벨트를 만났을 때 깜짝 놀라 보좌관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대통령이 그렇게 허약해진 줄 몰랐네. 차에 크림을 붓는데, 찻잔에 붓는 양보다 흘리는 양이 더 많더군. 정신은 멀쩡해 보이지만 몸이 완전히 망가졌어.”


루즈벨트의 심장주치의 하워드 브루언은 이륙 직후에 대통령실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이미 코를 골고 있었다. 젊은 해군 소령인 브루언은 ‘신성한 소’가 활주로에서 속도를 올리는 동안 대통령이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다. 루스벨트는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게 버틸 체력도 없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브루언은 흔들의자의 등받이를 소파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뒤에서 날지 모를 소음에 주의하며 의자에 앉아서 잘 작정이었다.


브루언은 루스벨트의 상태를 걱정했다. 1944년 3월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대통령을 처음 진찰했을 때,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고는 1년 이상 살 수 없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은 호흡곤란과 급성 기관지염에 시달렸다. 심장은 심하게 확장되고 혈액 순환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브루언은 심장병 약재인 디기탈리스를 처방해 주었다. 식단을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바꾸고, 휴식 시간을 크게 늘리며, 업무와 공식적인 접견 인원수도 대폭 줄이게 했다. 루스벨트의 수석 주치의 매킨타이어 중장은 대통령의 일상 스케줄을 방해하기 싫어 처음에는 브루언의 권고를 거부했으나 결국 일정을 줄였다. 매킨타이어의 요구로 대통령의 실제 몸 상태는 백악관의 믿을 수 있는 소수에게만 알려졌다. 루스벨트 본인에게도 비밀이었다. 기분 나쁜 소식을 싫어한 루스벨트는 자신의 진짜 건강 상태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은 ‘신성한 소’가 이륙하면서 내는 엔진 굉음과 기체 진동 때문에 깼다. 코와 목이 단단히 막혔다. 브루언은 등 뒤에 있는 루스벨트가 소파에서 뒤척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브루언은 진료일지에 루스벨트가 전용기에서 “소음과 진동 때문에 자주 깸”이라고 적었다. 이 점을 제외하면 “환자”는 예상보다 잘 지냈다. 루스벨트는 미국을 떠난 뒤 2주간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을 “철저히” 즐겼고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에도 “아침 늦게까지 자고, 오후에는 휴식을 취했으며, 꽤 거친 파도에도 꽤 일찍 취침했다.”


지중해의 중앙에 있는 몰타섬을 이륙한 ‘신성한 소’는 동쪽으로 시속 약 320킬로미터로 날아갔다. 여압 설비를 갖추지 못한 전용기는 주치의들의 요구에 따라 고도 6000피트를 유지해야 했다. 가급적 대통령의 호흡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전용기는 구름을 뚫고 지나가는 동안 요동쳤다. 몰타섬을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뒤 기상 상태가 불안정했다. 비밀경호국 파견대장은 대통령 침실에서 나는 소음을 듣고 확인하러 갔지만 그저 문이 앞뒤로 흔들리며 나는 소리였다. 조종사는 독일군이 그때까지도 부분적으로 점령한 크레타섬을 피하기 위해 항로를 북동쪽으로 바꿨다.


‘신성한 소’는 동틀 녘에 아테네 상공을 통과했다. 비행기 좌측에서 아테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P-38 전투기 여섯 대가 구름을 뚫고 나타나 에게해를 건너 눈 덮인 그리스 북부와 터키를 지나 최종적으로는 흑해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를 호위했다. 루스벨트의 딸 애나는 그리스의 섬을 구경하려고 일찌감치 깼다. “아름다운 일출”과 “작은 마음의 윤곽”을 빼면 황량했다. 모든 탑승객은 전날 밤에 시계를 두 시간 빠르게 맞추라는 지침을 받았다. 대통령은 착륙 한 시간 전에 옷을 입고 아침식사로 늘 먹는 햄에그를 대접받았다.


연합국 항공기는 소련 영공에 진입하면 90도로 방향을 틀어 아군기라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소련군 대공화기에 격추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신성한 소’는 크림반도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유파토리아를 출발하는 철도와 나란한, 약속된 항로를 비행하며 사키 비행장으로 향했다. 눈 덮이고 단조로운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전투기 한 대가 엔진 문제로 되돌아가고 이제 다섯 대의 호위를 받는 대통령 전용기는 활주로 위를 한 바퀴 돌다가 예정대로 모스크바 시간 12시 10분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짧은 활주로에서 줄곧 덜컹거리며” 착륙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2년간 미국을 대공황의 수렁에서 구하고, 주저하던 미국인을 설득해 궁지에 몰린 영국을 지원했으며,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연합군을 결성했다. 이제 두 개 전쟁 모두 승리를 눈파에 두고 있다. 연합군은 독일 국경에 도달하고, 일본군도 아시아의 점령지에서 내몰렸다. 죽음을 앞둔 군통수권자인 루스벨트는 4선 임기를 시작한지 불과 이틀 뒤에 위험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자살이라 다름없는 해외순방에 나섰다. 자신이 집착하는 마지막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루스벨트는 미국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승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3년간의 전쟁으로 지친 미국인에게 “항구적 평화”를 이미 약속한 상태였다.


1945년 2월 3일 루스벨트는 크림반도에 도착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땅을 밟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후 약 30년 동안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방문하지 않았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는 급변했다. 미군은 러시아 북부의 숲 속에서 백위군 편에 서서 붉은군대와 싸우다가 사상자 2000명 이상을 내고 아르한겔스크에서 무질서하게 퇴각했다. 1939년에 스탈린이 히틀러와 담압해 폴란드를 분할하고 핀란드와 발트 3국을 침략하자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고, 불과 몇 달 뒤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의 문턱에 도달하자 미국 여론은 완전히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공산 러시아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군사동맹국이 되었다. 헐리우드 영화는 소련을 용감한 군인, 삶에 만족하는 노동자, 미소 짓는 정치장교의 땅으로 그렸다. 1939년에 히트한 영화 <니노치카>에서 그려진 것과는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소련군의 승리가 거듭될수록 강하지만 자비로운 지도자가 이끄는 용감하고 믿을 만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확대되었고, 루스벨트 행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겼다.


러시아를 직접 체험한 일부 외교관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 해리먼은 러시아라는 곰이 “국제적 불량배”로 바뀌고 있다며 불평했다. 해리먼은 스탈린이 동유럽에 배타적으로 통제할 “영향권”을 두기 위해 “무력 수단”을 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리먼 밑에서 대사대리직을 수행한 조지 케넌도 유럽 분할은 불가피하다며 동의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공통의 적만 있을 뿐이다. 얄타회담 전날 케넌은 친구인 찰스 E. 볼렌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국 정부가 지정학적 현실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왕이면 모스크바와 적절하고 확실하게 타협을 하는 게 어떨까? 유럽을 노골적으로 각각의 영향권으로 나누어서 상대의 영향권을 건드리지 않는 거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크림반도에서 스탈린과 윈스턴을 만나기 위해 목숨 건 여행을 하는 루스벨트로서는 러시아와 유럽을 나눌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대부분의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루스벨트도 “제국”이나 “힘의 균형”, “영향권” 같은 것을 혐오했다. 루스벨트의 원대한 계획에서는 승리한 연합국의 친절한 감독하에 새로운 국제기구가 “항구적 평화”를 책임질 터였다. 대통령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군이 최대한 빨리 복귀하기를 원했다. 


스탈린은 루스벨트를 영접하러 사키에 오지 않았다. 그 대신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외무부 장관을 보냈다. 털가죽 모자를 쓰고 두터운 코트를 입은 몰로토프는 연합국 관리들에 둘러싸여 활주로에서 서성거렸다. 루스벨트와 애나는 대통령실 창문으로 러시아 여성들이 자작나뭇가지로 만든 빗자루로 활주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따뜻한 기내에서 20분 뒤 처칠이 탄 C-54 스카이마스터가 P-38 전투기 여섯 대의 호위를 받으며 착륙하는 것을 지켜봤다. 처칠이 탑승한 C-54는 미국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원래 루스벨트와 처칠은 얄타에 30~35명 정도의 핵심보좌관만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관료가 자신을 “없어서는 안될” 인원으로 여기는 바람에 결국 대표단 규모는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러시아인들은 장작난로로 난방을 한 대형 군용 텐트를 쳐서 수많은 군 장성, 장관, 외교관을 비롯한 수행원의 편의를 제공했다. 새로 도착한 손님은 큼직한 캐비아 덩어리와 강한 마늘향을 풍기는 햄, 훈제연어, 계란, 사워크림소스를 얹은 커드케이크, 달콤한 샴페인, 조지아산 화이트와인, 보드카, 크림반도산 브렌디로 이루어진 러시아에서의 첫 아침식사와 함께 따끈하게 데운 차를 대접받았다.


마침내 모든 인원이 환영식장에 모였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엘리베이터로 대통령을 내린 다음 양탄자가 깔린 오픈형 지프에 태웠다. 미국이 랜드리스로 소련에 원조한 지프였다. 소련 군악대는 미국 국가 ‘성족’, 영국 국가 ‘신이여 국왕을 구원하소서’, 소련의 새로운 국가 ‘위대한 레닌이 앞길을 비추고 스탈린이 우리를 인민에게 봉사할 자리로 올려주네’를 연주했다. 진한 남색 망토를 두른 루스벨트는 지프에 탄 채 거위 걸음으로 행진하는 의장대를 사열했고 처칠과 몰로토프가 루스벨트 옆에서 걸었다. 처칠이 보기에 루스벨트는 “노쇠하고 병들과 매우 불쌍해 보였다” 얼굴이 백지장 같이 하얗고 피부라기보다 밀랍처럼 보였으며 힘이 없었다. 오른팔은 지프의 옆에 걸쳐졌고 손도 축 늘어졌다. 처칠의 주치의 찰스 모란은 이렇게 회고했다.


“총리는 마치 빅토리아 여왕의 말년에 인도인 수행원이 마차를 따라다니는 듯 대통령 곁에서 나란히 걸었다. 두 사람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 수많은 카메라맨들이 몰렸다. 대통령은 늙고 야위고 핼쑥했다. 어깨에는 숄이나 망토 같은 것을 걸쳤는데 쪼그라든 듯했다. 무언가를 입에 넣기라도 하듯, 입을 벌린 채 정면을 보고 앉아있었다. 다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이 일은 그 뒤로 구설수에 올랐다.”


애나 루스벨트는 아버지가 “좀 걱정됐다.” 아버지가 “어제 힘든 하루를 보냈고, 비행기에서 조금 밖에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얄타까지 다른 수행원들 없이 자기만 대통령과 함께 차에 타서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 자고 다른 이들과 말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해질 무렵까지 얄타에 도착하려면 곧장 출발해야 했다. 두 사람은 제공된 다과도 마다한 채 스탈린의 패커드 리무진 중 한 대에 올라탔다. 동행 인원은 미국 경호원 한 명과 러시아 운전수 한 명뿐이었다. 차는 곧 “황량한 스텝”으로 출발했다. 차량 여러 대에 미국 비밀경호국 요원과 “무장한 러시아인”이 나눠 타고 대통령 차량 앞에서 달렸고, 나머지 미국과 영국 대표단 인원이 탄 차량이 긴 행렬을 이뤘다.


루스벨트는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크림반도 상황에 대한 우려할 만한 보고를 잇달아 받았다. 대통령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는 처칠이 “현지가 상당히 불편하리라고 예상한다”고 보고했다.


“처칠은 10년 더 조사해도 얄타보다 나쁜 곳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적절한 양의 위스키를 가져가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 동네에 창궐하는 티푸스와 이에 특효약이라고 하는군요.”


이틀 뒤 처칠의 전보가 도착했다. 사키와 얄타 사이에 있는 도로가 눈보라로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영국과 미국 선발대는 회담장으로 가는 길에 이용할 “산악로”를 협의하면서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차량의 통행은 금지되었고, 약 130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는 180미터 간격으로 배치된 수많은 소련 내무부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 중 다수는 남자처럼 긴 코트와 가죽벨트를 차고 어깨에는 “미군 제독이 착용하는 것 같은” 견장을 단 채 기관단총을 등에 맨 여성이었다. 처칠의 여성 보좌관 중 한 명은 집에 보낸 편지에 놀라움을 담아서 말했다.


“러시아 여성은 덩치가 크고 억세며 다리도 제가 본 사람 다리 중에 가장 길었어요. 독일놈들이 왜 살려두지 않았는지 알 것 같네요.”


러시아 병사들은 대통령이 지나가면 대통령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받들어 총 자세를 취했고, 다른 모든 차량에도 같은 자세를 취했다. 


도로에는 독일군이 크림반도를 30개월간 점령한 흔적이 줄줄이 이어졌다. 폐허가 된 건물과 불탄 전차, 뒤집어진 화물열차, 버려진 마을, 부상병이 있었고 특히 도시 안에 부상병이 많았다. 루스벨트는 코벤트리와 로테르담에 대한 공습과 바르샤바와 리디체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지만 나치의 파괴행위를 직접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은 루스벨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루스벨트는 그런 끔찍한 광경이 독일에 “되갚아주자”는 생각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들게 했다고 딸 애나에게 말했다. 루스벨트보다 차량 몇 대 뒤에서 이동하던 처칠은 “끝없고 매우 지루한” 자동차 여행을 대놓고 불평했다.


“출발한 지 얼마나 됐지?”


“한 시간쯤이요.”


딸 사라 처칠이 대답했다.


“맙소사! 이렇게 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하다니!”


사라는 다음 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의 기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황량한 시골길을 몇몇 우울한 얼굴의 농부를 지나쳐 끝없이 가고…. 용기와 인내와 아주 좋은 브랜디 한 병으로 버티며 끝없이 달렸지요!”


처칠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바이런의 서사시 『돈주앙』을 일행에게 읊었다. 연합국 차량 행렬은 “길이 넓고 곧은, 또 다른 음침한 도시” 심페로폴을 통과한 뒤 산악 지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바깥 경치는 더 다채로워졌지만 여전히 매우 황량했다. 쪽잠을 자다가 간간히 깨어 창밖을 본 루스벨트는 관목은 있어도 “상록수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는 업스테이트 뉴욕의 허드슨강 계곡에 있는 자신의 고향도시 하이드파크에 심은 나무 30만 그루를 떠올렸다. 루스벨트는 스탈린을 만나면 “이곳에 삼림녹화 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로 다짐했다.


이제 오후 3시가 지났고 루스벨트 부녀는 배가 고팠다. 두 사람은 전날 대서양을 건널 때 탄 순양함 퀸시에서 만든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길가에 멈췄다. 그때 해리먼 대사가 차를 타고 달려와 몰로토프 장관이 45분만 더 가면 나오는 알루시타라는 해변도시의 휴게소에 대표단 전체를 위한 점심을 준비했다고 보고했다. 식탁이 “음식과 와인으로 신음할” 정도였다. 소련 측은 휠체어를 탄 대통령을 위해 멋진 양탄자를 깐 경사로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루스벨트에게 두 시간에 걸친 식사와 음주는 무리였다. 루스벨트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얄타에 도착하길 원했다. 처칠(애나의 표현에 따르면 “그 늙고 단호한 새”)은 언제나 그렇듯 왕성한 식욕으로 음식에 달려들었다.


알루시타를 지난 후에는 이동로가 로마노프 도로를 따라 내륙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로나모프 도로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가 사냥터가 딸린 여름궁전까지 가기 위해 닦은 것으로, 황제의 운명을 가른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1년 전에 완공되었다. 경치가 더욱 극적으로, 심지어 로맨틱하게 바뀌었다. 약 1500미터까지 솟아오른 산, 넓게 펼쳐진 험준한 바위와 급류, 울창한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이 보였고 산비탈 쪽으로 수많은 도로가 지그재그로 뚫렸다. 일반 차량의 통행이 전면 통제된 것은 다행이었다. 이곳이 선발대가 경고한 좁은 “산악도로”였다. 대통령의 해군보좌관 윌슨 브라운 중장은 이렇게 말했다.


“커브 길이 짧고 급격했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벼랑 끝에는 가드레일도 없었다. 방향이 계속 바뀌면서 승객들이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졌다. 벼랑 끝에서 간신히 물러났다 싶으면 금방 아슬아슬하게 또 벼랑을 피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는 내내 차가 덜컹거렸다.”


갑자기, 대통령 일행은 마지막 산악도로에서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 편백나무와 포도밭과 붉은 기와지붕의 주택이 짙고 푸른 바다를 등지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날씨가 거의 지중해처럼 상쾌했고 향긋한 올리브나무와 오렌지덩굴 냄새가 풍겼다. 짧은 구간의 해안 지대를 주변의 산이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북풍으로부터 지켜주고 있었다. 쌓인 눈도 없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자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 6시 무렵 어둠이 드리울 때 루스벨트가 탄 리무진은 소나무, 야자나무, 편백나무가 줄지어 선 진입로에 접어들었다. 길게 늘어선 장미와 협죽도가 갈라지면서 바다 위 70여 미터 높이의 절벽에 거대한 르네상스 양식의 별장이 드러났다. 루스벨트가 방문한 곳은 니콜라이 2세가 즐겨 찾은 휴양지 리바디아 궁전이었다.


“도대체 처칠이 왜 걱정했는지 알 수 없군. 아주 안락한데 말이야.”


루스벨트가 방을 160개나 갖춘 궁전의 1층을 휠체어로 오가며 말했다. 소련 측은 대통령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래층 방 대부분에서는 거대한 장작이 난로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궁전 책임자는 루스벨트를 “몇 차례나 허리를 굽히며” 맞이했고 “각하”라고 불렀다. 독일군은 리바디아 궁전을 철저히 약탈했고, 나중에 궁전을 탈환한 소련은 한 달간 화물열차차량 수백 대로 모스크바에서 싣고 온 물자로 황급히 수리했다. NKVD 요원 수천 명과 소련군 병사를 동원해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배관을 복구했다. 주변경관을 차르 시절의 웅장한 수준으로 복구하는 데 루마니아군 포로도 투입했다. 침구류와 식기류를 포함한 주요 집기는 웨이터, 요리사, 하녀와 함께 모스크바의 1급 호텔에서 옮겨왔다. 소련 측은 그때까지도 얄타를 비롯해 인근 도시에서 “뎐도용 거울, 옷걸이, 세숫대야”같은 집기를 닥치는 대로 모으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현관홀과 붙은, 흰 대리석 기둥이 받쳐진 거대한 연회장으로 안내받았다. 그곳에는 루스벨트과 스탈린·처칠과 회담할 때 이용할 원탁이 이미 준비됐다. 루스벨트가 사용할 방도 본청과 연결된 동에 마련됐다. 그곳 역시 현관활에서 갈라지고, 주변에 무어인 양식의 정원이 있었다. 침실과 식당은 미국 선발대 중 한 명이 “초기형 풀먼 객차” 스타일이라고 묘사한 분위기로 꾸며졌다.


“묵직하고 커다란 그림이 마호가니 벽에 걸려있었다. 긴 술이 달린 오렌지색 비단 갓이 드리워진 황동 램프가 테이블에 놓여있었고, 부하라풍 카펫과 중동 양식의 녹색 쿠션이 바닥 곳곳에 놓여있었다. 이곳저곳에 둔하게 생긴 서랍장, 소파, 테이블, 의자 사이에서 소련 측이 이번 행사를 위해 어렵게 구한 제정 러시아 시대의 멋진 가구가 눈에 띄었다.”


주최 측은 지난 며칠간 양탄자와 그림을 대통령의 침실 안팎으로 옮기면서 “어떤 동양적 색깔이 가장 보기 좋은지” 따져봤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식탁도 방 이곳저곳에 옮기기를 반복하며 어ᄄᅠᇂ게 세팅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다. 루스벨트는 그보다는 백악관에서 신성시하는 의식인 저녁 일과에 더 신경을 썼다. 긴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친구들과 “아이들의 시간”이라고 부른 휴식 시간을 가졌는데, 진·베르무트·올리브와 소금물에 얼음을 잔뜩 담아 각테일 셰이커에 섞어서 즐겼다. 여기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러 간 애나는 얼음이 없다는 걸 알고 크게 실망했다. 궁전 책임자는 마티니 대신 “온갖 것을 뒤섞은” 듯한 “달콤한 혼합물”을 제안했다.


대통령 일행은 곧 칵테일을 포기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차르의 당구장에 앉았다. 애나는 그날 밤을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얼마 안 가 우리의 작은 잔이 보드카로 가득 찼다. 맛있는 캐비아를 대접받았다. 익히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보존처리된, 나처럼 어지간히 비위 좋은 사람이라도 먹기는 좀 어려웠던 저민 생선도 먹었다. 사냥한 동물로 만든 코스 요리가 나왔고, 다음에는 감자와 함께 꼬치에 꿰인 어떤 고기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두 종류와 커피,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디저트가 딸린 샴페인, 독한 술이 나왔다. 우리가 뭔가를 거절하면 궁전 책임자는 마치 천둥번개라도 만났거나 치명상을 입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루스벨트는 저녁식사 뒤 침대에 누웠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날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해리먼 대사는 미소 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20분 떨어진 곳에 있는 스탈린의 본부에 파견되었다. 처칠과 루스벨트는 몰타섬에서 크림반도로 날아오기 전날을 함께 보냈다. 그럼에도 대통령 특별보좌관인 해리 홉킨스는 두 정상이 본회담 전략을 짜기 위해 사전에 꼭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홉킨스는 불안감에서 활력을 얻는 유령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 기간 대부분을 대통령과 총리의 반영구적 집안손님으로서 런던과 워싱턴을 오가며 보냈다. 루스벨트와 이 ‘특별보좌관’의 관계는 예전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홉킨스는 1943년 말에 세 번째 결혼을 한 뒤 백악관을 떠났다. 그럼에도 사회사업가 출신인 홉킨스는 여전히 막대한 권력을 누렸고, 대통령에게 대놓고 비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좌관 중 하나였다.


애나는 상대가 영국 총리일지라도 불필요한 회담은 가급적 줄이고 싶었다. 애나는 대통령 침실에서 문 두 개 정도 떨어진, 청소용구 수납장만한 방에서 침대에 누운 홉킨스를 목격했다. 홉킨스는 창백하고 초췌한데다 초조했다. 홉킨스는 위암에 더해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 수면부족, 특히 과음으로 인한 “끔찍한 설사병”에 시달렸다. 이틀 전 아직 미국 대표단이 순양함 퀸시에 타고 있을 때 홉킨스는 배에 남은 마지막 위스키병을 비웠다. 홉킨스가 어찌나 자주 “비행”을 저질렀는지 설사약도 쓸모가 없을 지경이었다. 해리먼 대사의 딸 캐슬린에 따르면 의사들이 홉신스에게 “시리얼만 먹으라고 처방했는데도, 그 바보는 캐비아를 큼직하게 두 스푼 먹고 사워크림을 얹은 양배추수프까지 먹은 뒤에야 시리얼을 먹었다.”


홉킨스는 영미간 사전 정상회담을 하면 “러시아 친구들”의 불신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애나의 주장을 무시했다. 다음 날 아침 대통령과 총리는 “무조건” 만나야 했다.


홉킨스는 루스벨트가 “이 일을 자청”했다며 쏘아붙였다.


“대통령께서 원하시건 아니건, 그래야만 합니다.”





더 보고 싶으면 책을 사서 보시오.

마이클 돕스의 『1945』 서평 책 잡설

1945

작가
마이클 돕스
출판
모던아카이브
발매
2018.06.16.
평점

리뷰보기


* 출판사 모던아카이브의 서평 및 홍보 부탁을 받고 썼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실질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결정짓고 지금까지도 그 질서가 유지된 계기는 단연 1945년 2월의 얄타 회담과 1945년 7월의 포츠담 회담이 꼽힙니다. 이 두 회담이 가지는 중요성 때문에 해외에서는 여러 연구저작들이 있고 국내 학자들 또한 학술논문의 소재로 삼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두 회담을 단독 소재로 다루기 보다는 외교사나 제2차 세계대전사라는 큰 맥락을 다루는 서적들의 일부 지면을 통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마이클 돕스의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Six Months in 1945: FDR, Stalin, Churchill, and Truman–From World War to Cold War)은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고 싶은 독자들의 갈등을 해소해 줄 만한 책입니다.


저자인 마이클 돕스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돕스는 소련 주재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소련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이 경험을 살려 워싱턴포스트의 동구권 전문 특파원이 되었고 나중에는 동유럽 부장까지 이릅니다. 돕스는 특파원으로서 폴란드 연대노조 파업, 천안문 사태, 그리고 소련 보수파 쿠데타와 소련의 붕괴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여 역사적 현장에 있던 언론인입니다. 하필 『하우스 오브 카드』시리즈의 작가인 마이클 돕스와 이름이 철자 하나까지 다 똑같은 바람에 동일인물로 오해를 많이 사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작가에게 가야 할 메일이 자기에게 오거나 그 반대로 와서 서로에게 수신인을 착각한 메일을 보내 준다는군요;;


자신의 생애 때문에 스스로를 "냉전의 자식"이라고 생각한다는 돕스는 논픽션 시리즈인 이른바 "냉전 3부작"의 저술을 기획했습니다. 냉전의 종결인 소련 붕괴를 다루는 Down with Big Brother: The Fall of The Soviet Empire(1997), 냉전의 절정인 쿠바 미사일 사태를 다루는 One Minute to Midnight: Kennedy, Khrushchev, and Castro on the Brink of Nuclear War(2008, 국내에서는 『0시 1분 전』으로 번역출간), 그리고 냉전의 출발점인 얄타-포츠담 회담을 다루는 이 책을 2012년에 출간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냉전의 사건을 역순으로 저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얄타 회담으로 시작해 포츠담 회담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행동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일들을 흡사 정교한 세밀화를 보여주듯 생생히 전달해 줍니다. 책의 중심인물인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트루먼의 2월부터 8월에 이르는 6개월 동안의 행적과 대화들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당대 사건들과 관련이 있던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당대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돕스의 서술은 인물의 행적 뿐만 아니라 인물이 지나가거나 머물렀던 곳들의 유래와 모양, 특성 까지 빠지지 않고 서술하며 심지어 만찬에서 뭘 먹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씁니다. 돕스는 이러한 서술기법으로 독자로 하여금 1945년 2월부터 6월의 상황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 대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해 줍니다.


돕스가 어떤 식으로 서술하는지는 백문이 불여일견, 포츠담 회담을 다룬 일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상략)


(1945년 7월 25일) 오전 10시 45분 3거두가 세실리엔호프에 도착하자 수많은 영상촬영기사와 사진기자들이 이들을 맞았다. 등나무의자 세 개가 햇빛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각각 정확히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설치됐다. 회담 의장인 트루먼이 다른 두 정상과 같은 간격을 두고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크림색 대원수 재킷을 멋지게 차려입은 스탈린은 대통령 왼쪽 의자에 앉았다. 대령 복장을 한 처칠은 의자 배열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사진기자들을 보기 위해 몸을 돌린 처칠은 자기 뒤에 있던 등나무의자를 대략 30센티미터쯤 왼쪽으로 조용히 옮겼다. 두 민주국가의 정상은 누가 봐도 분명하고 상징적으로 단합된 반면, 소련 독재자는 40센티미터쯤 떨어져 외따로 앉아있었다. 트루먼은 다시 의자를 가운데로 옮기려 했다. 체중이 실린 만큼 의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처칠은 마치 선생님에게 장난을 친 학생처럼 즐거웠다. 처칠의 의자 장난은 어찌나 재빨리 이루어졌는지 트루먼 이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스탈린은 그저 앞만 보고 있었다. (503쪽)


(하략)


이렇듯 돕스의 생생한 필체는 일반적인 통사나 외교사 서적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다소 시시콜콜해보이는 사안까지 전부 서술하면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을 1945년 2월부터 8월까지 이끌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고 더 넓은 이해를 위해서는 여러 학술저작들을 보는 게 좋다고 보지만(한국어 자료의 경우는 특히 이화여대의 노경덕 교수님의 저작들을 추천해 드립니다), 돕스의 책은 흡사 잘 만든 드라마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해 주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대의 상황에 이 있다면 필히 읽어봐야 할 도서라 할 수 있습니다.


[공지] 이글루스를 시작하며




1. 본 이글루는 소련군 작전술의 발전사 연재와 그 참고 문헌들을 번역해 업로드하는 것을 중점으로 삼을 것입니다. 

2. 본 이글루는 대조국 전쟁(독소 전쟁)은 데이비드 M. 글랜츠를, 조선사는 오항녕 교수의 역사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3. 본 이글루는 상당히 소련 편향적인 자료가 많이 올라올 것이고 주인장의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이름 있으신 분들의 피드백이 필수적일 것이라 올라오는 글들을 곧이 곧대로 믿으시면 안됩니다. 

4. 본 이글루는 각주, 미주, 참고문헌 목록의 제시를 좋아합니다




5. 본 이글루는 대륙견공과 환국신민 파시스트들을 사절합니다. 








6. 본 이글루는 소련 편향적이지만 위와 같은 선생들도 사절합니다.

7. 이글루스에 상주하는 묻 이름 있으신 분들과의 교류를 바랍니다. 굽신굽신







『동부전선의 신화』 번역하다 생각난 개드립성 시나리오

1985년 5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외의 반대를 무릎쓰고 서독 비트부르크의 무장친위대 전몰자 묘지를 방문한다. 그리고 이 장면을 어둠 속에서 웃으며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한편 레이건의 행동을 생중계로 보고 있던 고르바초프 신임 서기장을 비롯한 소련 정치국원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때 KGB 의장이 미국을 뒤흔들 공작이 거의 준비되었음을 보고하고 고르바초프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얼마 후, 평범한 미국 시민인 주인공은 자신의 쇼핑백에 웬 남자가 서류뭉치를 집어넣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사람은 무리하게 찻길로 도망치다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고 그 뒤를 쫓던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시신에서 뭘 찾으려 든다. 집에 온 주인공은 문서를 살펴보지만 전부 독일어로 작성되어서 읽을 수가 없다.

그 다음 날, 어제 봤던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주인공을 미행하고,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또 다른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납치된다. 주인공을 납치한 자들은 다름아닌 미국 내에서 공작을 수행하던 KGB 요원들이었다. 주인공은 KGB가 자신을 납치하자 공포와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KGB 요원들은 주인공이 우연히 가진 서류들이 무엇인지 설명해 준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에리히 폰 만슈타인,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하인츠 구데리안 등의 독일 국방군의 주요 인물들은 비밀회동을 통해 조만간 제3 제국이 무너지면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는 상황이 올 것임을 예견했다. 이들은 그 상황을 틈타서 자신들의 가치를 서구 세계에 증명하고, 자신들을 나치 체제와 거리가 멀고 적대하기까지 했던 순수하고 명예로우며 기독교정신으로 가득한 군인으로 세탁하여 서구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결의를 했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유대-볼셰비즘의 완전한 절멸로 잡았다. 그리고 미군 장교들과 반공주의라는 공감대를 통하여 친목과 유대관계를 맺고, 냉전의 기류 속에서 자신들을 가해자가 아닌 명예로운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미군에 서서히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비밀 결의를 한 고위 독일군 장성들은 전부 사망했지만, 그들의 비밀조직은 1985년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미군 내의 일부 인사들이 나치 결사의 영향력 내에 있다는 것이 서류의 내용들이었다.

KGB는 이 결사와  문건들의 존재를 알아냈고 입수하여 서방 언론에 뿌려 레이건 행정부에 타격을 가할 목적으로 서류를 찾고 있었다. 주인공은 KGB를 의심하지만 이미 쫓기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함께 행동하게 된다. 그들의 뒤를 쫓는 FBI 요원은 이 작전에 같이 투입된 DIA 요원들이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이스라엘의 모사드에서도 이 나치 결사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모사드는 이 서류들에 언급된 나치 조직원들을 파악해 심판을 내릴 목적으로 서류를 찾고 있었다. 서류를 확보하려는 모사드는 먼저 서류를 선점한 KGB와 충돌을 빛는다. 모사드가 끼어드는 상황은 예상치 못했던 KGB 본부는 서류들을 원할히 소련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단 모사드와 협상을 타진한다. 모사드의 목적이 나치 결사 인원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것임을 알게 된 KGB는 서로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다고 모사드측을 설득하지만, 나치에 심판을 내리고 싶어도 미국에 타격이 가기는 바라지 않는 모사드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로 대치도 협력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놓인 KGB 요원들과 모사드 요원들은 서로를 열심히 디스하지만 그들의 가족들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체 수사로 같이 일하던 DIA 요원들을 비롯해 군 내에 나치에 포섭된 자들이 있음을 알게 된 FBI 요원도 결국 이들에게 협력해 준다.

한편 단순히 나치 결사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가담자 명단만 있을 걸로 알았던 서류에는 더 중요한 사항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대-볼셰비즘의 완전한 절멸을 목적으로, 그들의 조종을 받는 미군 내 핵무기 통제 장교들이 소련과 이스라엘에 전면적인 핵공격을 가한다는 계획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나치 결사가 단지 미국 내에서 어느 정도의 정치적 영향만 끼치고 있을 거라 판단했던 KGB 요원들은 충격에 빠지고 이 내용을 본부에 보고한다. 이스라엘 정부와 소련 정치국도 충격에 빠졌고 강경파 정치국원들은 미국이 이미 파시즘에 장악당했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하며 선제 핵공격을 당하느니 차라리 기습적으로 전면핵공격을 실시해 "감당할 수 있는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위협을 제거하자고 주장하며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난감하게 한다.

(중략)

겨우 상황을 파악하게 된 레이건 대통령은 비밀리에 NSC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한다. 그 와중에 NSC 내의 강경파들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이번 기회에 소련에 전면적 핵공격을 가해 최대의 안보적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킨다.

한편 서류를 되찾지 못하자 결국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나치 결사는 마침내 그들의 오랜 목표인 유대-볼셰비즘의 절멸을 목표로 계획을 현실에 옮기려고 한다.

과연 세계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이거 쓰고 나니 그냥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공포의 총합+워게임이 되어 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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