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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글루스를 시작하며




1. 본 이글루는 소련군 작전술의 발전사 연재와 그 참고 문헌들을 번역해 업로드하는 것을 중점으로 삼을 것입니다. 

2. 본 이글루는 대조국 전쟁(독소 전쟁)은 데이비드 M. 글랜츠를, 조선사는 오항녕 교수의 역사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3. 본 이글루는 상당히 소련 편향적인 자료가 많이 올라올 것이고 주인장의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이름 있으신 분들의 피드백이 필수적일 것이라 올라오는 글들을 곧이 곧대로 믿으시면 안됩니다. 

4. 본 이글루는 각주, 미주, 참고문헌 목록의 제시를 좋아합니다




5. 본 이글루는 대륙견공과 환국신민 파시스트들을 사절합니다. 








6. 본 이글루는 소련 편향적이지만 위와 같은 선생들도 사절합니다.

7. 이글루스에 상주하는 묻 이름 있으신 분들과의 교류를 바랍니다. 굽신굽신







동부전선의 신화: 미국 대중문화의 독소전쟁-8(3) 동부전선의 신화

진정성과 리인액터


제2차 세계대전 역사보존단이 보여주는 리얼리즘에 대한 헌신은 영국, 독일,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주요 리인액트먼트 참여자들을 위해 만든 진정성 지침서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지침서의 목적은 리인액트먼트 컨벤션들에서 참석자들이 전반적으로 동의한 것들이었다. 지침서의 저자는 리인액트먼트 단체인 그로스도이칠란트 소속이라는 점에서 신뢰를 얻었다. 그가 저술한 지침서는 독일군 리인액터에게 필요한 군복 색깔부터 독일군 월급지급대장 및 철모에 이르는 광범위한 물품들을 다루고 있었다. 지침서의 표준은 “제멋대로” 행동을 취하는 사람을 단체에서 쫓아낼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1 지침서의 저자는 “이 지침서를 만드느라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 모든 것은 모든 단체가 야전에서 보여줄 재현을 고양하기 위해, 그리고 해사 참여자 개인의 재현이 우리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되기 위함이다.”고 썼다. 저자는 초심자들에게 “다른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에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현을 다시 만들려는 사람은 이 지침서를 공부해야 한다.”2


완고한 리인액터를 위해 독일군의 1935년판 훈련교범인 『신병』(Der Rekrut)이 많은 업체들에 의해 취미활동에 필요한 만큼 유통되었다. 『신병』은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왜냐하면 1935년판이 재판되었다는 자체가 궁극적인 진정성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신병』을 광고하는 웹사이트는 리인액터들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신병』을 모르신다면 단지 독일군처럼 입은 사람일 뿐입니다.” 광고는 『신병』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진정한 독일군이 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 광고는 여기서 판매하는 『신병』이 유일한 영어 번역본이며 전쟁 전의 모든 독일군 교범 중 유일한 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병』의 광고는 “독일 군인의 의무” “군인의 공공행동”과 “전투의무” 장들을 소개했다. 이 장들은 독일 군인의 모든 상무정신을 반영하고 있다.3


라이브슈탄다르테 홈페이지의 페이지에는 다른 페이지로 갈 수 있는 링크들이 있다. 그러한 링크는 “독일 군인이 되고 싶다면”에서 “기본훈련(Die Grundausbilding) 및 ”친위대 군인(Der SS Soldat)“등의 제목이 있다. 이러한 링크들은 새로운 취미로 리인액터가 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통찰력을 제공해 줄 의도다. ”독일 군인이 되고 싶다면“의 글쓴이는 매우 짧은 자기소개로 시작되는 두 개의 글을 공개하고 있다. 리인액터들은 이 저자가 1990년에 처음으로 리인액트먼트 행사에 참여했으며, 그때 희귀한 군복과 장비를 질 좋게 생산하는 업체가 적다는 것을 알았음을 볼 수 있다. 이 글쓴이는 독일군에 대해 최대한 많이 배우려 연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장친위대가 정예부대로 구성되었다고 알았다. 머지않아 그는 연구를 통해 자신이 구매한 군복과 장비가 다른 리인액터들이 가진 고품질의 장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글쓴이는 무장친위대 인원과 친위대의 군복을 찍은 사진을 보며 자신이 이런 군복을 직접 생산하겠다고 생각했다. 취미가 성숙되고 더 실제 같은 무기와 장비를 구할 수 있게 되자, 글쓴이는 무장친위대 군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가장 진정성 있는 재료들을 구할 수 잇게 되었다. 그는 5,000달러를 써서 마침내 취미를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4


이 글쓴이는 1990년 이후에 리인액터가 된 사람들을 세 부류로 분류했다. 소극적인 사람들, 중도적인 사람들,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소극적인 사람들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K98 소총을 들고 있지만 피자를 먹는 사람들이고, 현대식 텐트에서 자며, 전장에서 무엇을 겪게 될지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글쓴이에게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경멸의 대상이다. 글쓴이는 이렇게 지적했다. “흠 잡을 데 없는 재현에는 시간, 돈, 그리고 연구가 필요하다.” 글쓴이의 열정적인 사람들에 대한 서술은 열정 없는 참가자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열정적인 사람들은 최고의 장비와 군복을 얻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적절한 두발부터 독일군의 훈련과 지휘에 이르는 독일 군인에게 요구되는 모든 수준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야전에서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 군가를 부르며, 심지어 속옷도 독일제를 입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독일 군인이다. 글쓴에는 마지막을 “신이 위리와 함께 한다.”(Gott Mit Uns)로 끝맺었다. 이러한 짧은 글은 리인액터들의 민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앞으로 얼마나 전환될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속옷부터 무기까지 유럽을 휩쓴 무장친위대 군인이나 독일 국방군 군인이 되고 싶어 한다. 신이 독일군의 편에 있다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독일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가져온 공포와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5


두 번째 페이지에서는 리익액터들과 잠재적 리인액터들에게 독일군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킬 목적의 기본훈련과 워크숍을 소개하고 있다. 글쓴이는 리얼리즘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제1 중대(Kompanie) 1 소대(Zug) 지휘관(Truppenfuhrer)으로 자칭한다. 글쓴이는 자신의 부대가 첫 번째 “기본훈련”(Grudausbildung)을 마쳤다고 썼다. 이 이벤트는 글쓴이가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가 1975년에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그를 매혹시킨 것이었다. 글쓴이는 라이브슈탄다르테의 창설자들이 질 좋은 관련상품을 살 수 없어서 전쟁 당시의 장비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았다. 라이브슈탄다르테는 아직도 그 장비들을 보관하고 있다. 글쓴이는 라이브슈탄다르테의 역사를 따라가며 리인액트먼트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확실한 재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리인액터들은 자신들의 군복과 장비를 다른 행사에 참여할 때 입지 말아야 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활동이 리익액트먼트를 모르는 “민간인”들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워크숍들은 독일군의 화기교범을 통하여 진정성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리인액터들은 독일군의 행군보조 방식을 실제 훈련의 일부로 포함시켰고 점심은 스패너 스튜로 먹었다. 훈련 마지막 날에는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글쓴이가 “경이적인 동기부여”라고 쓴 철십자 훈장(Ritterkreuz)과 독일 금십자(Deutsch Kreuz im Gold)가 수여되었다. 글쓴이는 단체에서 훈장을 수여받은 사람들이 “최고의 수완가 (중략)다른 단체와 우리 단체를 차별화시키고 취미에 모든 것을 바치려는 사람”이라고 쓰며 글을 끝맺었다. 글쓴이는 서명으로 친위대의 구호인 “충성은 남의 명예”와 독일식 작별인사인 우샤(Uscha)를 쓰고 단체 마크를 그렸다. 확실히 이러한 경험은 전쟁 당시의 실제 라이브슈탄다르테에 대한 글쓴이의 낭만화된 시각을 충족시켜주었고 무장친위대를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싸웠으며 나치의 이념과 행위와 무관한 전투조직으로 보는 그의 이해를 확인시켜 주었다.6


리인액트먼트에서 진정성이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정도는 한 페이지에 있는 표에 있다. 이 표의 작성자는 독일 군복의 다양한 부위들을 설명하며, 리인액터들에게 군복을 사용할 때 다주 범하는 실수들에 대해 충고하고 있다. 글쓴이는 “LAH는 독일군 리인액터의 수준 발전에서 최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썼고 단체의 “전반적인 수준이 현존하는 모든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들보다 더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언은 진정성에 헌신하는 집단에서 기대할 만할 정도로 극히 자세했다. 글쓴이는 질 좋은 군화가 현재 있긴 하지만, 리인액터들에게 단지 저가에 내구도가 좋다고 스위스군의 군화를 구매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글쓴이는 스위스제 군화는 군화끈이 빛나는 걸로 알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군화가 금방 눈에 띄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썼다. 글쓴이는 더 조언을 하며 군화는 “오직 가죽으로 제작되고 굽에는 강철 징을 박아야 한다”고 썼다. 글쓴이는 열정적인 사람들은 강철 굽을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군모부터 벨트와 손목시계에 이르는 자세한 사항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결국 글쓴이는 군복, 무기, 기타 전쟁물자를 진정성을 갖추고 생산하는 것 만큼 리인액터들이 취해야 할 태도와 정신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글쓴이는 리인액터가 최고의 독일 군인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이 행동을 진성성과 결합하여 자신을 궁극적인 군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리인액트먼트 단체에 속한 독자들과 리인액트먼트 행사에 참석하는 민간인들은 이러한 사항을 알게 될 것이었다.7


진정성에 대한 이러한 고려는 진정성을 더 엄밀히 추구하려는 고집센 리인액터들을 “바느질 나치”(Stitch Nazi)로 만들었다. 그들은 웹사이트나 리인액터들의 회보에 불만을 게재했다. 한 번은 모직물 군복이 아닌 “헤링본 무늬 능직물 군복”을 입었다고 “바느질 나치”들을 화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군복이 리얼리즘을 해친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리인액터들 중 둥조덕인 사람들은 그러한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두 진영 다 리인액트먼트 행사장에 부절적할 복장을 하고, “디지털 시계”를 착용하고 “필터 담배”를 피우거나 “한심한 장비”를 가지고 온 “파브들”(Farbs, 단체에서 요구하는 진정성에 따라 옷을 입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는 리익액터들)이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리인액트먼트 단체인 그로스도이칠란트는 신입 단원들이 적절한 군복과 장비를 가질 수 있도록 “고참들”과 연결시켜서 이런 오류를 방지하고자 한다.8


더 강박적인 리인액터들은 매년 독일군 참전자들을 방문해 전쟁과 전쟁 참전자들을 더 잘 이해하려 한다. 몇몇 중에는 전장 행동을 더 진정성 있게 만들려고 독일어에 숙달되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리인액터는 독일로 가서 독일연방공화국 문서보관소에 보관된 전쟁 당시의 사진들을 연구하려 시도했다. 그는 이러한 시도로 독일 군인과 그들이 싸운 전장환경에 관련된 지식을 자세하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몇몇 리인액터들은 자신이 격식을 벗어났다고 인정하며 집을 독일군 관련 장식품으로 장식해 놓고 가구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가구를 사용하며 방에 수집품들을 전시해 놓는다. 심지어 몇 명은 “그 시대에 살고”있다. 리인액터들은 그러한 장비들을 의심할 것도 없이 리인액트먼트 행사 때마다 나타나는 벼룩시장에서 얻었을 것이다.9



진정성과 낭만화


시각 자료는 모든 리인액터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은 독일군을 다루는 영상을 광고하려 웹사이트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전시 독일에서 만든 영상은 리인액터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인의 실제 무기, 군복, 철모, 배지, 그리고 기타 장구류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형벌대대인 슈트라프바타일론 999(Strafbataillon 999)는 리인액터들이 가진 독일 군인 인식에 대한 심리적 측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평론한 사람은 국제역사영화에서 나온 광고처럼 이 대대가 독일군의 다른 부대와는 다르다고 썼다. 999대대는 독일군의 군법을 어긴 행위를 한 군인들이 배속되는 형벌부대였다. 여기서 우리는 리인액터들이 과도하게 가치부여를 한 영웅주의와 평범한 사람들과의 연결을 볼 수 있다.10


“이러한 병사들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거나 괴저치료 혈청을 찾기에는 너무 많은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후퇴 명령을 내린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위 사령부에게 처벌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권한을 남용하는 지휘관 밑에서 적의 포화 속에서 무의미한 참호를 파거나 최후의 자살 임무에 투입되었다. 그들의 적들은 곳곳에 있었다.”11


이 평론자는 영화가 동부전선의 음물한 광경을 매우 현실적으로 벼우조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확실히 이러한 평론은 리인액터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독일군 이미지와 그들 인식의 강력한 정당화를 제공하는 데 알맞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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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2HPG: Authenticity Guidelines," http://freehosting2.at.webjump.com/3a69490ee/a1/w2hpg/ger1_auth_regs.html과 http://freehosting2.at.webjump.com/3a69490ee/allW2hpg/authen.html
  2. http://www.reenactor.net/WW2/ww2_read.html.
  3. “Der Rekrut," http://www.reenactor.net/WW2/rekrut.htm. "Wolrd War II, http://www.reenactor.net/mail.htmls/ww2.html. http://members.aol.com/soldaetn/rekrut.htm.
  4. "So You Want To Be A German Soldier," http://www.lssah.com/art1.html.
  5. Ibid.
  6. "Die Grundausbildung," http://lssah.com/art1.html.
  7. "Advanced Impression," http://lssah.com/taylor.html.
  8. Thompson, War Games, pp. 66-67, 212-17. “Farbs You Find Everywhere";를 참고할 것. Tony Horowitz, Confederates in the Attic: Dispatches from the Unfinished Civil War (New York, Pantheon Books, 1998), pp. 10-11. "The Definition of FARB," http://www.reenactors.net/WW2/articles/on_farbs.html. 2006년 리인액터들의 행사 일정은 http://www.lssah.com/events.html을 참고할 것.
  9. Thompson, War Games, pp. 10, 72-73.
  10. "Readings," http://www.reenactor.net/WW2/ww2_read.html.
  11. Ibid.
  12. Ibid.

동부전선의 신화: 미국 대중문화의 독소전쟁-8(2) 동부전선의 신화

리인액터들과 그들의 세계


리인액터들의 사회적 배경은 다양하다. 그들은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있다. 화학자들과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독일 군인의 복장이나 친위대 부대의 흑색 제복으로 숨기고 주말마다 행사에 참석한다. 전화 교환수와 자동차 수리공도 사무실이나 작업장을 떠나 주말마다 전장으로 간다. 심지어 부유한 투자가도 스트레스 받는 업무를 떠나 리인액터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들은 리인액트먼트 단체에서 사회적 위치나 수입의 구분은 사라지고 진정성이나 군사계급이 행사가 시작되면 그것들이 새로운 중요성을 가진다.1


행사가 시작되고 행사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축복하면, 사회에서의 위치나 월급의 많고 적음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우정과 연대가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생기고, 몇몇은 리인액트먼트가 그들을 하나로 묶는 데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독일을 찬양하는 독일군 군가를 부른다. 한 경우 리인액트먼트 단체인 그로스도이칠란트에서 그들의 병영을 나치의 스바스티카가 그려진 실제 그로스도이칠란트의 사단기들을 걸어서 장식해 놓았다. 전쟁 당시의 독일군 선전 포스터들도 벽에 걸려있다. 행사 참여자들은 조국 독일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고 그들의 기억을 보존하는 명예를 위해 참석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실제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출신 독일군 참전자들도 리인액트먼트 단체에 합류해 리얼리즘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리인액터들을 만족시켜 준다.2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은 자주 자신들의 취미활동이 들통나면 직장에서 불이익이 될 까 불안해한다. 그 결과 그들은 자주 리인액트먼트 활동을 숨긴다. 그들은 나치의 표식과 독일군 군복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전쟁의 몇몇 측면에 매혹되어서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몇몇 사람들은 1960년대에 남북전쟁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본 이후 리인액터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썼다. 그들은 심지어 친위대 군복에 빠져들어 친위대 리인액트먼트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독일군은 나쁜 놈들이긴 했다.”라고 인정했다.3


똑같은 군복을 입음으로서 행사 참석자들 사이에 강한 평등이 생기고, 전쟁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고, 제2차 세계대전에 평범한 군인으로 참여하며 열정을 쏟는 것들이 리인액트먼트에 사람들이 참석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이러한 감성들은 유명한 전투를 다룬 책을 읽거나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보러 가는 딜레탕트들과는 구분되는 감성이다. 전쟁과 독일 육군 및 친위대에 매혹됨으로서 생겨난 강력한 동지애가 이 사람들을 매일 서로 묶어 놓는다. 독일군 리인액터들은 동료애(Kameradschaft)를 자신들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한다. 공통의 관심사는 현실사회의 세계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쉽지 않거나 아예 없던 우정을 만들었다. 리인액터들의 상호작용은 그들의 계급과 사회적 위치에서 만들어진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보다 더 강력한 관계를 만들었다. 소수의 독일군 리인액터들은 자신들의 리인액트먼트 행사 참여를 축하하러 독일 군복을 그대로 입고 독일요리 식당으로 가서 독일군 병사처럼 행동한다. 리인액터들은 자주 대중이 자신들의 연대를 이해하지 못하며, 사회에서는 자신들에게 매우 중요한 연대가 없다는 데에 한탄을 한다.4


아마추어 역사가로서의 리인액터


리인액터들은 사설행사 및 공공행사에 참여하는데 공공행사 참여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리인액터들이 참여하는 공공행사는 “에어쇼, 병영체험”이 있으며 리인액터들은 이곳에서 민간인 가이드 역할을 맞는다. 리인액터들은 이러한 행사를 “투어온즈”(touronz, 리인액터들의 용어로 “관광 행사”)라고 부르며 행사참여를 하며 중요한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미 국방부 같은 정부기관이나, 군용차량보존협회(Military Vehicle Preservation Association)같은 민간단체들, 그리고 지방 당국들이 리인액트먼터들의 행사에 참여한다.5


웹사이트들은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의 목적이 대중을 교육하는 데에 있다고 빈번히 발표한다. 리인액터들은 공공행사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말하는 기회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인 제10SS 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Frundsberg)는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역사가로 여깁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대중에 전파하고 전술 리인액트먼트를 합니다.” 이러한 선언은 이 리인액트먼트 단체의 단원들이 독일 군인, 무장친위대 군인, 그리고 그들의 모든 일생을 묘사하는 데 최대의 진정성을 발휘하려는 시도를 강조했다. 리인액터들은 이러한 목적을 독일군의 “군복을 입고 장비를 착용”하여 달성하려고 한다. 이들의 선언은 리인액트먼트에 참여하는데 역사적 정보가 상당히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6


이와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 역사보존단(World War Two Historical Preservation Group, W2HPG)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목적은 20세기를 만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서 일반 병사들의 역할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촉진하는 것입니다.” 이 단체의 단원들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의 일상생활, 생활조건, 장비, 그리고 군복에 대해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W2HPG의 단원은 “수십 개의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에서 온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러한 자원봉사자들은 W2HPG가 봉사자들에게 요구하는 “행사 동안 ‘첫 번째 사람’의 인상을 유지하는‘ 많은 전시품들을 보유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행사 참여자들이 가지고 오는 장비는 역사적으로 완벽히 정확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대중에게 장비의 작동 매커니즘을 설명하고 간혹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W2HPG는 리인액트먼트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감사하도록 촉진하는 교육환경“을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7 캘리포니아 리인액터들의 조직인 캘리포니아 역사단은 이와 비슷하게 ”대중에게 일반 병사들이 전쟁 당시에 처한 어려움을 대중에게 더 좋게 교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리인액터들에게 그들이 재현하는 독일 군인과 무장친위대 부대원들의 문화에 열중하라고 요구한다. 리인액트먼트를 포함한 이러한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질문과 답변 시간 및 후원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역사지식을 보여주어야 했다.8


그들의 대화에서 리인액터들은 전쟁의 자세한 사항들이나 개별 군인의 복장과 무기를 넘어서는 대화는 별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대화 소재들은 그들이 일반 병사를 재현하고 그들을 기억하는 데 집중함을 반영하고 있다. 독일군의 도덕성, 전범재판에서의 유죄 판결, 그리고 사회 및 경제적 요소는 그들의 대화에서 빠져 있다. 결국 리인액터들은 재현하는 군대의 특성이나 명성은 생각하지 않고 일반 병사로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들의 취미를 추구한다. 리인액터들은 대중과 상호작용을 하며 심지어 자신들을 리인액터라고 부르지 않는다. 몇몇 리인액터들은 자신을 “살아있는 역사가”로 부르고 리인액트먼트 행사 이상의 것을 공공행사에서 하며 타난다. 리인액터들은 자신들이 공공행사에 참석할 의무가 있다고 여기며 자주 공종행사를 보러 가는데 왜냐하면 민간인들이 그들의 행사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리인액트먼트 행사의 몇몇 후원자들은 독일식 훈련을 정확하게 하고 “독일어로 명령을 내리며” 청중들의 주의를 집중시켜서 찬사를 받은 독일군 리인액터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리인액터들은 심지어 군중들 앞에서 독일군 군가를 부르기도 한다. 미군의 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도 친위대 리인액터들과 같이 노래를 부른다. 놀랍게도 독일 국방군 참전자들을 비롯한 청중들은 행사를 축하하고 독일 군인의 기억을 살아있는 존재로 보존하려는 리인액터들의 노력에 찬사를 바친다. 독일군 참전자들이 고향 독일에서는 참전자들이 나치 체제의 정책 때문에 가혹한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재현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독일군 참전자들이나 독일군 리인액터들이 독일군과 친위대가 민간인에게 자행한 범죄를 논했다는 기록은 없다.9


리인액터들과 인터넷


사설행사는 리인액트먼트의 핵심이다. 리인액터들은 대게 주말 동안 수백 명의 동료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다. 작은 행사인 경우 15명이 참석하고 큰 행사면 100명이 참석한다. 이러한 야외 행사는 하루 밤을 들판에서 보내기도 한다. 금요일은 리인액트먼트 단원들이 단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날로 간혹 의견충돌이 일어난다. 실제 전술 재현 리인액트먼트 행사는 토요일에 하는데 야간 행사까지 할 때고 있다. 일요일에 리인액터들은 무기를 챙겨 집으로 간다. 리인액터들은 사설행사들을 제2차 세계대전을 직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을 경험하고 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본다. 한 리인액트먼터는 “1942년의 관점에서 당시의 장면을 보며 역사를 상상”할 수 있다고 썼다. 이러한 “재현”은 개인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쟁과 관련된 더 큰 문제들과 심각한 도덕적 문제는 확실히 없다.10


리인액터들은 인터넷을 주요 접촉수단으로 사용한다. 실제 웹사이트는 그들의 주요 통신수단이다. 예를 들어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는 무장친위대의 계급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의 의무와 역할을 짧게 설명해 준다. 이 페이지는 모든 단원들이 알아야 하는 진급체계를 설명해 준다. 이 페이지는 또한 진급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교들을 구분한다. 그러한 정보는 전장 행동과 행위를 통해 보상을 받을 중요한 수단인 진급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에서 친위대 하급반지도자(Unterscharfuhrer, 하사)가 되려면 지원자는 “친위대 분대지도자(Rottenfuhrer, 국방군 병장에 해당) 계급이어야 하며 평균 이상의 헌신과 지도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중대장은 진급자 추천을 하고 “최고 위원회”에서 진급을 승인한다. 제1SS에서는 지원자극 “3번의 주요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웹사이트에 공지사항으로 게재되어 적극적인 리인액터들이 추구하는 리얼리즘을 보여준다.11


웹사이트들은 계급 식별 규정을 보여준다.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의 홈페이지에는 “계급, 계급 간 예절, 군의 조직: 계급(Dienstgrad)과 육군의 복색(Gliederung des Heer)” 란에서 각각의 기장들을 보여주고 있다. 리인액터들은 “독일군은 매우 공식적이고 극단적으로 ‘정확성’을 강조함을 알게 된다. 이들에게 계급 식별은 매우 필요하다. 계급을 알아보는 주요 수단은 견장(schulterklappen)이다. 장교와 부사관의 견장 차이를 보고 어떤 면에서 다른지 설명하는 짧은 시험도 있다. 사이트에는 상병(Unteroffizier)부터 중위(Oberleutenant)에 이르는 견장들이 설명문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 이 페이지는 다시 저자가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상당한 연구를 했음을 말한다. 시각자료와 설명문은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 그러한 정보로 무장한 리인액터들은 읽고 공부하는 것을 통해 자부심을 얻으며 참여할 수 있다.12


이 사이트들은 완전군장을 한 리인액터들의 사진을 전시해 놓는다.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는 무기와 친위대 군복 및 철모를 갖추고 장갑차량 옆에 서 있는 리인액터들의 사진을 사이트에 게재했다. 그 사진에는 이 차량이 실제 무장친위대 전투부대에서 발견한 것이며 잠재적 단원들에게 이 사진이 진짜처럼 보이는 설명이 달려 있다.13 사이트에서는 병기를 더 구체적으로 자세히 보는 데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진을 제공한다. “총류탄(Gewehrsprenggranaten)이 달린 카라비너(Karabiner) 98K 마우저 소총이나 총검(Seitengewher)이 달린 마우저 소총”의 사진이 각각 한 장씩 올라와 있다.  이러한 사진 밑에는 전시 생산량과 작동원리를 비롯한 98K 소총의 역사가 간략히 서술되어 있다. 여기에는 소총의 사거리, 무게, 길이도 나와 있다. 다른 사진은 MP43/44 기관단총과 81 mm(8cm) 박격포를 보여주고 있다.14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원들을 독일 군인처럼 보이게 하는, 독일 군인이 전시에 사용하던 물품 이상이다. 한 사이트는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한 군복을 입은 실제 사람은 어떻게 생겼나요?” 그러한 질문에는 두발 형태부터 문신과 체중에 이르는 사항을 말한 여러 답변들이 달렸다. 머리카락을 어떻게 깎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정확한 재현에 통찰을 준다. 한 글은 독일군 규정에 의한 구제척인 두발규정을 묘사하고 있다. 규정에 의하면 콧수염은 허용되지만 조금만 길러야 한다. 이 페이지는 단원들이 기를 수 있는 콧수염의 길이를 동판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페이지는 부록으로 머리와 수염 손질에 실증을 내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썼다. “이 방법을 명심하세요. 이 방법은 당신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게 아닙니다. 자른 머리는 다시 자랍니다. 보장합니다.” 그들은 또한 규정된 두발형태가 멋져 보이지 않고 독일 군인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턱수염과 구렛나룻은 규정된 사례가 없었다. 오직 독일군 산악부대(Gebirgsjager)만이 어느 정도까지 턱수염을 기를 수 있었다. 이 글은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 군인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의 스톤웰 잭슨의 병사들을 묘사하는 게 아닙니다.”고 쓰고 있다. 이 페이지는 구체적인 헤어스타일을 말했다. “목부터 귀 주위까지 반짝이도록 깎으세요.” 이러한 헤어스타일을 서술한 글은 그것을 묘사한 동판화를 동반했다. 이 페이지는 단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헤어스타일이 조금 극단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겐 말입니다!”15


리얼리즘을 위한 탐색은 헤어스타일도 정확히 “프로이센식” 두발을 유지하고 리인액터들이 그러한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단체에서 쫓겨날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행사 조직자들이 “엄격한 두발규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경우, 한 리인액터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과 핀란드군의 머리를 깎아온 핀란드인 이발사를 만났다. 핀란드인 이발사는 그에게 리인액트먼터들은 참전자들이 “국방군컷”(Wehrmachtschnitt)라고 부르는 헤어스타일을 재현했다고 말했다. 이 리인액터는 머리를 “국방군컷”으로 깎아달라고 부탁했고 이발사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그러한 정확한 규정에 어긋나면, 리인액터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야전 이발사”였다. 한 명의 정체성을 다시 만들려는 노력은 그러한 요구의 목적에서 명확하게 나타났다. 리인액터들은 자신들을 말 그대로 독일 군인으로 만들려고 했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면 받아들일 수 없었다.16


규정 때문에 리인액터들은 행사 중 안경을 쓸 수 없었고 1940년식 안경집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단체 규정은 리인액터들이 규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썼다. 왜냐하면 실제 당시 독일 군인들이 말랐기 때문에, 리인액터들도 그만큼의 체중을 유지해야 했다.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은 실제 독일군 참전자에게 자신들을 평가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참전자는 리인액터들을 보고는 퉁명스럽게 “너무 뚱뚱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참전자는 또한 리인액터들이 다른 미국인들처럼 구부정하게 서고 껌을 씹고 다닌다고 불평했다. 그는 독일 군인들이 항상 차렷 자세를 하고 껌을 “소처럼!” 씹지 않았다고 주장했다.17


이러한 사이트들은 낭만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물품들과 유물들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사이트는 독자들에게 수집가들과 리인액트먼터들이 가지고 싶은 물품의 견본을 보여주었다. 그 게시글에는 32쪽의 소책자를 “마우저 수집가들을 위한 최고의 정보출처”라고 논평한 『아메리칸 라이플』(Amercian Rifles)의 편집장이 쓴 마우저 소총에 대한 짧은 논의가 있다. 평론은 또한 이 소총을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 리인액터는 누구라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른 평론은 서적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 자동화기』(German Automatic Weapons of WW II)를 논평했다. 이 128쪽짜리 책은 진정성과 리얼리즘을 원하는 낭만가들가 수집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진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평론은 ”자세세한 클로즈업 사진“을 가지고 있으며 리인액터들이 큰 관심을 가질만할 책이라고 썼다. 그 평론가는 독일군이 사용하던 안경집이 리인액터들에게 전시를 하거나 실제 사용할 때 매우 유용할 거라고 썼다. 안경집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 리인액터는 누구라도 가져야 할“ 물건이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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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ompson, War Games, pp. 7-8, 10, 26, 38, 48, 51. 62-63, 77, 79, 84.
  2. Thompson, War Games, pp. 26-27.
  3. Thompson, War Games,, pp. 50-51, 56-59, 68, 72, 87. 독일군 리인액터들에 대한 적대감은 Thompson, War Games, pp. 114, 125를 참고할 것.
  4. Thompson, War Games, p. 58. 필자는 그들의 저녁식사 자리가 리인액트먼트 행사 참여를 축하하고 독일군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로 가정한다. 의심할 것도 없이 거의 남자인 이들은 이러한 저녁 모임에서 큰 즐거움을 느낀다. 톰슨은 대중이 리인액트먼트를 얼마나 이상하게 보는지 리인액터들이 잘 알고 있지만 그 중 소수만이 리인액트먼트를 하며 느끼는 감정이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이라고 인정한다. 대부분 이들은 자신들이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Thompson, War Games, p. 59, 134를 참고할 것.
  5. "Homepage," http://members.xoom.com/Falcon.Div/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6. "Homepage," http://members.xoom.com/Falcon.Div/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7. http://freehosting2.at.webjump.com/02e743cb6/a1/w2hpg/index2.html. 이 단체는 팬실베이니아 주 벤세일럼(Bensalem)에서 2000년에 설립되었다. http://freehosting2.at.webjump.com/02e743106/a1/w2hpg/officers.html.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8.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 http://www.io.com/-tog/thms.html도 참고할 것.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9. Thompson, War Games, pp. 109-11.
  10. Thompson, War Games, pp. 2-3, 14, 88, 145, 150-51, 164-65, 172-73.
  11. "Waffen-SS Ranks," http://www.lssah.com/ranks.html. 리인액트먼트 행사 참여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Unit Awards and Decoration," http://www.lassh.com/awards.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awards--decorations ) 참고할 것.
  12. “Rank, Military Courtesy and Organizaion of the Army, Dienstgrad and Gliedrung des Heere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ger-rnak.html.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13. "Vehicles of the LAH," http://www.lssah.com/vehicles.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vehicle-heavy-weapons ); http://www.lssah.com/field2.html.hml; http://www.lssah.com/pznerkampfwage_381.html; http://www.lssah.com/truck.kubel.222.html.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14. Weapons of the LAH," http://www.lssah.com/LAH%20weapons.html.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15. "Germans RE-enactor's Apperance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apperance_grm.html; "Apperances Standard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WW2_appear_main.html; "Frundsberg Uniform Requirment," http://members.xoom.com/FalcoDiv/.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16. "Germans RE-enactor's Apperance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apperance_grm.html; "Apperances Standard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WW2_appear_main.html; "Frundsberg Uniform Requirment," http://members.xoom.com/FalcoDiv/.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Thompson, War Games, pp. 210-13도 참고할 것.
  17. "Germans RE-enactor's Apperance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apperance_grm.html; "Apperances Standards,“ http://www.reenactor.net/WW2/articles/WW2_appear_main.html; "Frundsberg Uniform Requirment," http://members.xoom.com/FalcoDiv/.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18. Re-enactor Items and Collector Reference Books For Sale," http://www.vvm.com/~histpart/books.htm.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동부전선의 신화: 미국 대중문화의 독소전쟁-8(1) 동부전선의 신화

제8장. 전쟁의 낭만화: 리인액터와 “만약에” 역사


미국 대중문화에서 “깨끗한 국방군”의 신화가 주는 매력은 독소전쟁의 전투들과 그곳에서 싸운 부대들을 다시 만드려는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에서 가장 명확히 나타난다. 리인택트먼트는 동부전선의 기록들에 대하여 자기 전문분야 이외의 분야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열렬한 독서가들, 그리고 수집가들의 세계 전반에 걸쳐 있다. 리인액터들은 군복, 장비, 지형에서 완벽한 진정성을 유지하면서 동부전선의 전투들에서 다시 싸우고 행동을 재현하는 일을 적즉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리인액트먼트를 통해 역사적 진정성이 떨어지지만 낭만가들의 목적인 “옹호론”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독일군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만약에”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장르의 서적들은 리인액터들의 대체역사 접근을 크게 고양한다. 이러한 서적들은 만약 독일군이 다르게 행동했으면, 만약 히틀러가 작전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독일 장성들의 계획만으로 작전이 진행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에 대해 서술한다.


낭만가들은 리인액트먼트 행사에 참여할 준비를 하며 다양한 자료출처를 사용한다. 그들은 독소전쟁에서 ㅆㆍ운 독일군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회고록을 비롯한 많은 자료를 섭렵했다. 그들은 독일군의 장비 군복, 무기를 비롯한 당시 전쟁 때 사용된 장구류를 논하는 수집가들의 책을 출처로 사용한다. 이러한 물건을 생산하는 업체가 다양하고 관련 유통업체들이 있어서 낭만가들이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하는 데 필요한 물량이 있다. 독서와 경험 및 관찰은 리인액터들에게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이나 무장친위대의 사단들 같은 유명한 부대들에 대해 세부적인 상황까지 알려준다. 리인액터들 중 소수만이 독일 국방군의 사단들과 특히 무장친위대의 사단들이 히틀러에게, 나치 국가에, 그리고 나치의 목적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1


리인액트먼트의 역사


적극적인 취미로서의 리인액트먼트는 1685년 이후 10여 년간 열린 남북전쟁 참전자들의 야영 행사에서 시작되었다. 야영행사는 이후 참전자들이 싸우고 고통을 받았던 전장에서 자신들의 공훈을 되살려 내는 리인액트먼트 행사로 서서히 변했다. 남군 참전자들도 이 행사에 참여해 북군 참전자들과 전투경험을 공유하며 한때 서로 싸웠던 사람들이 동료애를 강화하게 되었다. 남분전쟁 참전세대가 사라지자, 그러한 행사도 사라져갔지만, 남북전쟁에 열정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행사를 시작하며 더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행사 참여자들은 1930년대 초의 전미총기협회 회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남북전쟁 당시의 총기들을 사용하는 사격 대회를 열었다. 남북전쟁 리인액트먼트 행사에 참여하는 전미총기협회 회원들은 1950년에 남북전투협회를 창설했다. 이 협회 회원들은 남북전쟁의 대규모 전투들을 소규모 리인액트먼트 행사로 재현했다. 회원들은 1965년에 남북전쟁 종결 100주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 이러한 리인액트먼트 행사는 불 런(Bull Run) 전투나 제1차 매너서스(Manassas) 전투부터 게티즈버그 전투에 이르는 주요전투들을 재현했다.2


20세기의 남북전쟁 리인액트먼트는 크게 성장했다. 남북전쟁 리인액트먼트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수천 명의 열정적인 사람들이 소규모 행사다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며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리인액터 집단들은 20세기 최초로 조직된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을 형성했다.3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집단의 기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데에 미주리 주에 사는 프레드 파디그(Fred Poddig)와 그의 친구들이 제2차 세계대전 리인액트먼트 단체를 세웠다. 참전자인 파디그의 아버지는 어린 파디그에게 텔레비전 드라마 「호건의 영웅들」에 묘사된 독일 군인들이 무능하고 광대처럼 묘사된 것에 화를 냈고, 이는 그에게 큰 자극을 준 기억이 되었다. 파디그는 독일군을 광대처럼 묘사한 것은 제3 제국을 상대로 거둔 미군의 승리를 확실히 폄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의 감정을 이해했다. 파디그의 아버지는 참전자로서 군인의 명예 같은 개념을 봐 왔다. 파디그는 아버지가 알았듯이 독일 군인들은 전장에서 전문성과 강인함으로 싸웠음을 깨달았으며 독일군의 그러한 면을 자신의 리인액트먼트 단체인 제1 SS 라이브슈탄다르테에서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파디그는 이때부터 낭만가들의 세계로 여행을 시작했다.4


1975년 5월에 파디그와 그의 단체는 미주리 주의 웰던 스프링(Weldon Spring)에서 행사 참가자의 음식, 탄약, 연막탄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참가비 10달러를 받으며 최초의 제2차 세계대전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시작했다. 10월에 파디그는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세인트루이스 소재)를 창설했고 퀴벨바겐(Kubelwagons) 2대, 사이드카가 달린 준다프(Zundapp) 모터사이클 1대, 그리고 1940년산 포드 트럭 한 대를 구매했다. 파디그의 리인액트먼트 행사는 독일에 있는 무장친위대 참전자 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파디그에게 조언과 도움을 주겠다고 자원했다. 파디그는 이미 유대인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과 언론매체의 감독을 받기로 해서 무장친위대 참전자 단체들의 요청을 거부했다.5


파디그는 몇 년 만에 리인액트먼트 장비 시장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행사에 필요한 장비, 군복, 관련물품을 생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단체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는 공공장소에서 퍼레이드를 열고 미국 대외전쟁참전자군단(Veterans of Foreign Wars and the American Legion) 같은 단체들의 후원 아래 여러 공공행사를 열었다. 파디그와 이 취메에 뛰어든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머리를 군대식으로 깎고 군용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실제 이 단체를 유지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다.6


1985년에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이하 LAH)의 단원이 100명이 되었다. 단체가 확대되며 변화가 있었다. 파디그는 참가자들의 군복을 통일하고 보유한 군용차량을 더 늘렸다. 단원들은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할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미 육군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미 육군은 포트 녹스와 캔자스 주의 포트 캠프벨(Fort Campbell) 및 위스콘신 주의 포트 맥코이(McCoy)에 행사장소를 대여해 주었다. LAH는 보이스카우트 협회와도 접촉해 실제 전장과 비슷한 공간을 대여했다. 1990년 초에, LAH(상징적인 약칭)에서 활동하는 리인액터들이 150명에 도달했다. LAH는 회원 수가 이렇게 되자 “중대”(Kompanie,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은 중대 같은 단어를 자주 독일어로 표기한다.) 본부를 구성하였다. 1991년에는 단원 수가 200명에 도달했다. 공식 본부를 갖춘 LAH는 주차장도 하나 더 구입했다. LAH는 단체의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본부가 완전한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해 보이는 헌병(Feldgendarmerie) 소대를 구성했다. 1999년에 인터넷의 존재 때문에 리인액트먼트가 인기를 얻을 때에  LAH의 단원 수가 250명을 초과했다. LAH는 매달 두 번의 회보를 발간했고 모든 단원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토론장도 운영했다. 마지막으로 LAH는 단체의 활동에 대한 최근정보를 알려주는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이리하여 리인액터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사는데도 매일 접촉하여 앞으로의 행사 정보를 알려주고 리인액트먼트 활동에 필요한 상당한 자료들을 보내주었다. 이 사이트는 1998년부터 2006년 1월 초까지 354,000명의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7


LAH의 신입단원은 가입을 보고할 중대장(Kompaniefuehrer)에게 환영 편지를 받는다. 신입단원은 중대 참모장(KompanieStabscharfuehrer)에게 가서 LAH에 대한 정보를 받고 활동허가를 얻는다. 중대 참모장은 신입단원에게 메일을 통해 SS 전투식별카드를 발부하고 신입회원이 공식적으로 LAH의 단원이 되었음을 선포한다. 지원자(Kandidate, 이 웹사이트는 가능하면 항상 독일어로 표기한다)로 불리는 신입단원은 LAH에서 활동하기 전에 수습 기간을 갖는다.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 1세대에서는 행사의 모든 측면에서 리얼리즘이 주입되었고 진지함을 보여주었다.8


리인액트먼트 행사의 확고한 본질은 1990년대 말에 등장한 새로운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의 수에서 나타난다. 6개 독일 공수부대 리인액트먼트 단체를 비롯한 40개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의 수는 그들의 라이벌인 미군 리인액트먼트 단체들(21개)을 능가한다. 독일군리인액트먼트 단체들 중 20개가 무장친위대 리인액트먼트 단체로 이들이 가장 인기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독일군에 열정을 퍼붓는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 두 번째 제1 SS 라이브슈탄다르테를 창설했다. 콜f로라도에서는 제2SS 다스 라이히가 창설되었고 캔자스에서는 제11SS 노르들란트가 활동을 시작했다. 동부해안 주들에서는 그로스도이칠란트 제7 중대와 제3 기갑척탄병사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활동했다. 2006년 기준으로 낭만가들은 독일군 리인액트먼트 단체 124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독일 해군 리인액트먼트 단체들도 있다.9


이러한 단체들은 한 주나 한 지역 전체에서 활동하는 더 큰 리인액트먼트 협회들 소속이 되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는 애너하임(Anaheim)에 있는 캘리포니아 역사단(California Historical Group)과 제휴를 하고 있다. 북서부 역사협회(Northwest Historical Association)는 오레건 주 포트랜드(Portland)에서 활동하고 있고 텍사스 군사사 협회(Teas Military Historical Society)는 텍사스 주 벨레어(Bellarie)에 있으며 미국 남서부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협회들은 “전투 재현 (중략)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주, 공동체, 학교 이벤트에서의 전시”를 통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보존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서적 거래인들, 비디오 회사들, 잡지 시리즈들, 그리고 군수물자 생산업체들과 전쟁기록 유통업체들도 리인액트먼트에 뛰어들었다. 빌뷰로스밀리태리어(Bill Bureau‘ Militaria), 라스트 바탈리언(Last Battalion), 1944 밀리태리어, 제3 제국 문서들(나치 독일의 상장과 관련 문서 생산), 그리고 전쟁영화를 판매하는 국제역사영화(International Historic Film)를 비롯한 회사들이 리인액트먼트 취미에서 급속히 성장하는 사례가 되었다. 2006년에 리인액트먼트는 시카고의 대도시 지역에서 최초의 국제 리인액트먼트 컨벤션이 열리며 성숙한 취미가 되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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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2차 세계대전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의 웹사이트 전반은 "World War II, Reenactment & Historical Linds," http://www.anderfront.com/cuslinks.htm을 참고할 것. (역주: 링크 접속 불가) 이 사이트는 “리인액트먼트 행사 달력”, “리인액트먼트 관련 사이트”, “군사사 사이트 분류”, “군용장비와 군사서적 구입처”, 그리고 “리인액트먼트 협회”의 주소를 링크로 달아놓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리인액트머트 단체 중 13개는 미국 내에 있고 2개는 영국에 있다. 검색엔진 aol.com에 독일 국방군, 동부전선, 제2차 세계대전을 검색해 보면 12개의 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다. 검색된 사이트로는 제2차 세계대전 리인액트먼트 사이트부터 군사서적 온라인이 있다. “진실과 기억에 대한 공격:맥락에서 본 홀로코스트 부정- 제1장”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 관련정보를 찾으려면 “비슷한 사이트 더 검색”을 클릭하면 된다. 넷스케이프(Netscape)는 구글처럼 더 많은 사이트를 검색할 수 있으며 넷스케이프와 다른 검색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사이트도 찾아볼 수 있다. 리인액트먼트의 역사에 대해서는 "1SS Libestandarte," http://www.lssah.com/unit%20hist.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unit-history ); "World War 2 Reenacting", http://www.reenactor.net/main.htmls/ww2.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17 )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을 참고할 것. 2006년 1월까지의 리인액트먼트 발전사에 대해서는 이 사이트에서 리인액트먼트를 소개하는 제5페이지를 참고할 것. http://ww2reenactors.proboards35.com/ ( http://ww2reenactors.proboards.com/ ) 무장친위대 군용품 수집 가이드는 Robin Lumsden, Collector's Guide to the Waffen-ss (Hersham, Surrey, Ian Allan Publishing, Ltd., 2000); Lumsden, A Collector's Guide to the Allgemeine-SS (Hersham, Surrey, Ian Allan Publishing, Ltd., 2002); Lumsden, A Collector's Guide to Third Reich Militaria (Hersham, Surrey, Ian Allen Publishing, 2000), Lumsden, A Collector's Guide to the Third Reich Militaria: detecting the Fakes (Hersham, Surrey, UK, Ian Allen Publishing, 2001)과 Chris Ellis, A Collector's Guide to the History and
  2. Junney Thompson, War Games:Inside the World of Twentieth-Century Reeanctors (Washington, D.C., Smithsonian Books, 2004), pp. 36-37, 44-46.
  3. "1SS Libestandarte," http://www.lssah.com/unit%20hist.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unit-history ); "World War 2 Reenacting", http://www.reenactor.net/main.htmls/ww2.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17 )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을 참고할 것. 톰슨은 21세기 현재 리인액트먼트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총 6,000여명으로 추산했다. Thompson, War Games, p. xiv. 현재 활동하는 리인액터들은 대부분 남북전쟁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Thompson, War Games, p. 63을 참고할 것.
  4. http://www.lssah.com/komm.html; "1SS Libestandarte," http://www.lssah.com/unit%20hist.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unit-history ); "World War 2 Reenacting", http://www.reenactor.net/main.htmls/ww2.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17 )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
  5. "1SS Libestandarte," http://www.lssah.com/unit%20hist.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unit-history ); "World War 2 Reenacting", http://www.reenactor.net/main.htmls/ww2.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17 )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을 참고할 것.
  6. "1SS Libestandarte," http://www.lssah.com/unit%20hist.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unit-history ); "World War 2 Reenacting", http://www.reenactor.net/main.htmls/ww2.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17 )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을 참고할 것.
  7. "1SS Libestandarte," http://www.lssah.com/unit%20hist.html ( http://lssahwebmaster.wixsite.com/lssah/unit-history ); “World War II, Reenactment & Historical Links," http://www.anderfront.com/enslinks.html; http://www.lssah.com/news/html; http://www.lssah.com/batt.html. Thompson, War Games, p. 61. 인터넷의 영향은 http://www.lssah.com을 참고할 것.
  8. www://www.lssah.com/kt2.html; http://lssah.com/batt.html; http://lssah.com/batt.html. 제1SS 라이브슈탄다르테를 이끄는 것은 진정성이다. 진정성에 대한 강조는 "Die SS Soldat," http://www.lssah.com/SS%20soldat.html을 참고할 것. 이 사이트에서는 리인액터의 “인상”이나 리인액터의 군복, 장비, 무기, 그리고 1940년대 독일군의 모든 장비와 사용품을 논의하고 있다.
  9. http://www.geocities.com/ww2_links/axis.html;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
  10. 북서부 역사협회와 캘리포니아 역사단 같은 단체들에 대해서는 "World War 2 Reenacting:Parent Organization“, http://www.rennactor.net/WW2/ww2_orgs.html ( http://www.reenactor.net/index.php?page=70 ), http://www.anderfront.com/enslinks.htm; 텍사스 군사사 협회는 http://www.io.com/-tog/tmhs.html을 참고할 것.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2006년에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은 뉴질랜드부터 유럽까지 나타나는 등 범 세계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WW II Reenactor's Nexus," http://geocities.com/ww2links/societies.html을 참고할 것. (링크 접속 불가) 리인액터들은 자주 전쟁 당시의 군용품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이기도 하다. Thompson, War Games, p. xv를 참고할 것. 리인액터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목록은 같은 책의 pp. 289-95를 참고할 것. 청동기와 철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모든 시대의 리인액트먼트를 보려면 "Reenactors World Plus," http://www.reenactorsworldplus.com을 참고할 것. (역자 주: 링크 접속 불가) 이 사이트에서 e메일 계정을 개설해 더 많은 자료에 접촉할 수 있다. 관련 물품의 사례로는 http://users.jnlk.com/militaria/를 참고할 것. 장비의 사진들은 http://users.jnlk.com/militaria/pictures.html을 참고할 것. 리인액터들이 디자인한 다양한 생산품들은 http://users.jnlk.com/militaria/whatsnew.html을 참고할 것. 관련 상품과 공급자들의 광고는 http://lssah.com/waffen.html을 참고할 것. (역자 주: 언급한 링크 모두 접속 불가) 최초의 리인액트먼트 연례 컨벤션은 “NEWS" http://members.aol.com/soldaten/mail.htm(링크 접속 불가) http://www.reenactorfest.com/을 참고할 것.

동부전선의 신화: 미국 대중문화의 독소전쟁-7(끝) 동부전선의 신화

인터넷은 또한 독일 군인, 독일군 지휘관, 그리고 독일군의 적들을 상상하고 재창조하는 태도, 의견, 자료, 그리고 활동의 확신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도구는 우리에게 제한된 방법으로라도 계속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무엇이 인터넷 사용자들을 독일 국방군과 동부전선으로 끌어들이는가? 우리는 본서에서 제시한 근거가 이러한 경향의 모든 면을 나타내지 못함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근거들은 우리에게 젊은이들이 독소전쟁의 무엇에 이끌리는지에 대한 확고한 근거를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애착을 가진 것에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을 가진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과 삼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이었다. 몇몇 경우 할아버지들이기도 했던 참전자들은 소련에서 싸웠던 독일 국방군과 직접 전투를 치른 세대였고 전장의 실상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전쟁을 처음으로 알게 된 소년이나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자료의 출처였다. 한 경우 관련 사이트의 회원은 참전자인 가족들이 “독일 국방군과 싸운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밝혔다. 모든 경우 그들의 아버지들, 삼촌들, 할아버지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소년들을 사로잡아 독일 국방군과 국방군의 동부전선 전투에 오랫동안 애착을 가지게 하는 근원이 되었다. 몇몇 경우 사이트 회원들 중에는 유럽인이 있었고 이들은 독일 국방군의 운명이 결정된 여러 전장 근처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1


다른 경우 책, 만화,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독일군으로 이끌었다. 그러한 책에는 폴 카렐의 『히틀러가 동쪽으로 움직이다』부터 페터 나우만(Peter Nauman)의 『검은 행진』(Black March), 그리고 한스 루델의 『슈투카 조종사』가 있었다. 독일군이 수행한 전쟁의 규모는 독자들을 매료시켰고 그들이 독일군을 보게 하였다. 한 젊은이는 발렌타인 출판사와 밴텀 북스에서 카렐의 책들을 페이퍼백판으로 출간한 것을 보고 동부전선에 즉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썼다. 이와 비슷하게 스벤 하셀이 쓴 동부전선을 다룬 소설은 젊은이들이 동부전선을 다룬 문학작품을 보게 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독일군의 비장에서 본 강력한 전투묘사는 비록 그것이 허구라 할지라도 독자들을 사로잡하 그들이 독소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싶게 만들었다. 한 경우 사이트의 회원은 헤르만 괴링의 전기 『제3 제국 원수』(The Third Reich Marshal)에 빠져들어서 “스바스티카가 그려진 이 책을 학교에 가지고 갔다”고 밝혔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행동 때문에 급우들 중 많은 수가 그에게 적의를 보였다. 많은 경우 독일 국방군이 적에게 기세를 꺾이고 많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다가 패배한 것이 독자들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2


대중매체 또한 독일군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는데 역할을 했다. 몇몇 경우 「지상 최대의 작전」같은 영화나 텔레비전 시리즈 「호건의 영웅들」에서는 독일군 등장인물들이 동부전선으로 배치될 거라는 위협을 받는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동부전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월요일 오후에 방송되는 전쟁영화도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찾고 싶게 만들었다. 현실성 있는 영화나 코미디 영화도 동부전선과 전쟁 자체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한 경우 사이트 회원 중 한명은 미국 영화가 독일군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거나 불공정하게 다룬다고 주장했다. 그 회원에게 영화 속의 역사는 확실히 승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고 대중매체는 그러한 승자의 감성을 재생산한다는 것이었다. 몇몇 경우 회원들은 독일 측의 서사를 읽도록 자극했다. 한스 루델의 『슈투카 조종사』는 그 중 한 가지 사례다. 한 회원은 루델의 책에 나오는 전투장면과 영웅적인 이야기들을 보고 전쟁 이야기를 담은 아버지의 책을 보고는 결국 독일 국방군이 묘사된 텔레비전 영상을 찾아다녀 전투의 실상에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썼다. 이 경우 그 회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독일 국방군과 싸운 사람들이었고, 그 때문의 그의 가족사를 바라보았을 때 미국의 맥락에서 적이었던 존재를 좋아하는 것은 이상해 보일 수 있다. 이 모든 사례에서 서적, 시각매체, 그리고 자주 그들이 어렸을 대 본 코만도 만화들의 영향이 복하되어 있다. 많은 회원들이 독일군의 관점을 어린 시절부터 받아들였고, 동부전선과 독일 국방군에 대한 경험을 담은 책들을 더 읽어도 그들의 상상력과 열망을 강화시켜주기만 하였다.3

이러한 상상들은 동부전선과 독일 국방군의 다른 표상에도 의존하고 있다. 무기의 유형, 군인, 그리고 전투는 수집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이끌리는 대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은 독일군의 훈장, 군보그, 그리고 독일군 그 자체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워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을 드라마틱하게 다른 결과, 즉 독일의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취미들은 자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독일군에 대한 다른 서적이나 시각 자료를 보며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록(Rock) 상사 만화 시리즈도 이 면에서 역할을 했다.4


이러한 매체들을 첩하고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동부전선의 독일군에 대하여 낭만화된 관점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세대는 미국에서 냉전기에 성장했고 군복무를 했다. 미국 남성 청년의 대부분은 군을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미국을 수호하는데 필요한 애국적 의무로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은 전쟁”의 참전자들에게 둘러싸였으며 냉전기에 미국을 돕는 독일인들이 끔찍한 적에게 패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수십년 간 받아들여 왔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들과 시각 매체들은 독일 국방군을 낭만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상황의 기원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의 압력 속에서 동부전선에 대한 자료들은 대게 독일군 출신들이 만들었으며, 이들은 독일 국방군이 소련과의 전투에서 영웅적인 효과를 보여주었다고 썼다. 독일군 회고록들과 자료들 뒤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은 동부의 전쟁이 병사들과 장군들이 승리를 위해 가혹한 전장에서 싸운 것으로 보았고 독일군의 이념적 목적은 보지 않았다. 스벤 하셀의 소설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동부전선의 이미지를 세탁하고 독자들이 전장에서 견디고 버텨낸 소설 속 인물들을 추양하게 했다. 소수만이 독소전쟁의 진정한 본질이나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소련에 보여준 적대적 관점이 독일이 미국의 동맹이 되며 전후 독일에도 계속 남아있음을 보았다. 누구도 소련의 여성과 어린이가 대부분의 희생양이 되었던 동부전선의 진정한 공포를 깨닫지 못했다. 누구도 소련의 도시들과 수천 개의 마을들이 전투나 초토화 정책으로 파괴되었음을 보지 않았다. 게다가 공격을 당하는 시골 및 도시 지역에서 소련군이 그곳에 잔류한 민간인들을 구하려고 최대의 노력을 가한 일도 알지 못했다. 잔류한 소련 민간인들은 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의 복잡성과 독일군이 이러한 공포를 자아낸 책임은 동부전선을 여가나 취미로 만들면서 회피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그러한 해석은 희귀하고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사이트 회원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그래서 동부전선과 동부 전역에서 국방군과 무장친위대의 역할을 호의적이고 이상화된 관점으로 보는 관점을 표출한다. 회원들의 댓글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 조직과 그 역할의 복잡성을 비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독일군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편견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독일군에 열정적인 한 회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독일군은 한명 한명이, 부대 하나하나가, 야전군 하나하나가 무너지지 않았어요.” 그는 계속 이렇게 썼다. “그들은 공세나 방어에서 뛰어난 공적을 세운 놀라운 전사들이었지요.” 그러한 주장은 독일군이 다른 회원들이 비난하곤 한 나치 체제 및 나치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음을 뜻한다. 독일 군인은 정치와 무관하지만 용감하고 격렬하게 싸우는 “전사들”로 나타났다.


다른 회원은 그들이 “독일군에 대한 오늘날의 낭만적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으며 “독일 국방군에 평생 중독되었다”고 말했다. 사이트의 회원 중 한 사람은 실제 군사 경험을 하기 위해 미 해병대에 입대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결국 “독일 자료가 많은” 미 해병대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되었다. 다른 회원은 군에서 제대하며 군에 대한 낭만적인 관점이 그저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회원은 자신의 경험이 “이 길고 단순한 시간”과 싸워온 독일군 참전자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부전선의 독일군 참전자들에게 “존경과 추양”을 표출했다. 그 회원이 가진 독일 군인에 대한 애착은 자신의 전쟁겸험과 자신의 상상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낭만주의로 강화되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 한 낭만가 회원은 사이트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있는 꿈”을 꾸었으며 그곳에서 자신이 “SdFK2Z 232(독일군의 하프트랙)을 타고 봉형 수류탄을 적에게” 던졌다고 썼다. 이러한 꿈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환상을 가져왔다. 꿈에서의 경험과 상상은 동부전선의 복잡성과 공포와 거리가 멀다.5


낭만가들의 세계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새로운 전자통신 수단으로 연결되어서 공동체들을 만들었다. 새로운 웹사이트들은 전통적인 정보저장 수단에서는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저장했다. 인터넷은 낭만가들이 독일군의 영웅적 세계를 더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검색을 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인터넷은 또한 24시간 동안 세계 전체에서 논쟁과 정보교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낭만가들의 문화는 이제 새로운 기술적 환경으로 범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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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주목할 만한 경우로는 소련군 참전자이며 베를린 전투에도 참가한 조부를 둔 러시아인 회원이 있었다. 이 청년은 자신이 러시아 학교에서 배운 2차 세계대전사가 이념적 특성이 강하다고 불평했다. 그는 체제에서 자유로워지자 독일군의 전투와 경험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관련된 대화는 http://www.uwm.edu/-jpipes/wwwboard/messagesnew4/31191.html, 31556, 31554, 31458, 31317, 31448, 31408, 31330, 31327, 31321, 31311, 31307, 31299, 31298, 31278, 31277, 31272, 31251, 31217, 31214, 31193, 31233, 31215, 31298, 31225, 31195, 31226, 31273, 31232, 31234, 31252, 31276, 31312를 참고할 것. 이 게시글은 2000년 4월 17일 월요일에 올라온 “독일 국방군에 처음 관심을 가진 때는 언제였나요?”라는 질문글에 달린 글이다.
  2. http://www.uwm.edu/-jpipes/wwwboard/messagesnew4/31191.html; 31215, 31225, 31266, 21232, 31234, 31252, 31276, 31307, 31278, 3127도 참고할 것. 아이러니컬하게도 본서의 저자 중 한명인 데이비스가 동부전선에 대해 처음으로 접한 때는 1965년에 밴텀 출판사에서 나온 카렐의 『히틀러가 동쪽으로 움직이다』가 출간된 지 몇 주 만에 읽었을 때였다. 당시 책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1.25달러였고 저자는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자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 대해서는 지식이 거의 없었다. 저자는 책을 구매했고 이후 동부전선에 대한 저서 수백 권과 워게임 수백 개를 이후 35년간 계속 구매하게 되었다! 카렐의 책은 본서에서 노하는 사이트 회원 중 많은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영향을 끼쳤다.
  3. http://www.uwm.edu/-jpipes/wwwboard/messagesnew4/31191.html. 31214, 31208, 31226, 31234, 31485, 31330, 31272, 31251도 참고할 것.
  4. http://www.uwm.edu/-jpipes/wwwboard/messagesnew4/31191.html. 31214, 31208, 31226, 31234, 3148531330, 31272, 31251.
  5. http://www.uwm.edu/-jpipes/wwwboard/messagesnew4/31191.html.31566, 31327, 31311, 31226, 31448, 31311도 참고할 것. 우리는 본서에서 소련 사람 전체를 동부에서 재조직하고 추방하려는 나치의 목적을 언급했다. 독일군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전쟁 초부터 서구에서는 전투와 민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쟁수칙을 고려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지시는 히틀러의 레벤스라움 내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독일 점령지의 소련인들은 착취당하고, 노예가 되거나, 추방당했다. 확실히 독일군의 전쟁포로 및 민간인 대우와 전투의 격렬함은 그러한 전쟁수칙이 이 잔인한 전쟁에서는 최고의 각주였음을 보여다. Omer Bartov, The Barbarisation of War on the Eastern Front, 1941-1945 (New York, St.Martin's Press, 1986)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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